재화 아닌 취향에 지갑을 여는 시대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 영역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고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이른바 ‘영 앤 리치’ 고객을 겨냥해 여러 패션 매장이 의류 매대를 줄이는 대신 미술 작품을 걸어두는 ‘갤러리로의 변신’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물산 패션도 실험적인 공간 마케팅을 잇따라 선보이며 성공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서울경제와 만난 박영미(사진) 삼성물산 여성복사업부장은 “작가들과의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한국의 미(美)를 강조한 K멀티브랜드숍을 해외에 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삼성물산 패션의 공간 마케팅은 최근 리움미술관 아트숍과의 컬래버로 화제를 모았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 입점한 여성복 ‘살롱 드 르베이지’ 매장에서 리움미술관 아트숍과 손잡고 미술품을 전시해 200만 원짜리 판화와 90만 원짜리 달항아리 여러 점을 판매한 것이다. 살롱 드 르베이지는 여성복 브랜드 르베이지가 건축가 서승모와 함께 달항아리를 콘셉트로 꾸민 매장이다. 이곳에서는 시즌 컬렉션 상품뿐 아니라 아트 작가들과 협업한 라이프 스타일 상품을 선보인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K멀티브랜드숍 ‘ZIP739’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여성복 브랜드 ‘구호’가 지난달 새단장해 문 연 이곳은 ‘영앤리치의 성지’로 통한다. 구호와 코텔로, 르베이지 등 유명 여성복 브랜드와 고가 가구를 둘러보던 발길은 자연스레 2층의 전시장으로 연결된다. 가나아트센터가 직접 운영하는 전시장 라운지에서는 뉴욕 브루클린 기반의 아티스트 에단 쿡을 시작으로 매달 신진 디자이너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패션은 ZIP739를 열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별도로 구성했다. 기존 여성복사업부뿐 아니라 리움미술관 아트숍, 제일기획 출신 컨설턴트와 마케팅팀도 합류했다. TF는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향부터 가구, 쇼핑백에 새겨진 폰트까지 영앤리치를 공략해 구성했다. 박 사업부장은 이 공간에 대해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와 같은 영앤리치 여성의 ‘그녀’를 페르소나로 두고 (공간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패션 회사가 영앤리치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의 영향력이 40~50대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블라우스 한 벌 가격이 100만 원대에 달하는 르베이지에서 20~30대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10%를 넘어섰다. 박 사업부장은 “오늘날 젊은 소비층은 그림과 가구 등을 통해서도 자신의 능력과 소비를 향유하고 있다”며 “이것이 공간 마케팅에 예술을 접목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패션은 이 같은 콘셉트의 매장 구현에 더욱 힘을 싣는다는 계획이다. 박 사업부장은 “한국의 미를 강조한 살롱드 르 베이지는 이미 해외 바이어들이 찾는 필수 코스가 됐다”며 “앞으로 한국의 미를 강조한 K멀티브랜드숍을 해외에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