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농요 흔적찾아 녹음기 들고 세계 누볐죠"

'한국 논매기 총서' 완성 앞둔 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장

23년간 유럽·남미 등 발로 뛰어

국내선 매년 7~8차례 전국 오가

근원·경로 수집해 책 78권 채워

"젊은층도 농요에 관심 가져주길"

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장이 경기도와 전라도·경상도 등 각 지역의 논매기소리를 담은 총서를 소개하고 있다. 올해 강원도와 서울, 북한의 농요까지 담은 총서가 발간되면 한국의 모든 논매기소리를 알 수 있는 총서가 완성된다.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장이 경기도와 전라도·경상도 등 각 지역의 논매기소리를 담은 총서를 소개하고 있다. 올해 강원도와 서울, 북한의 농요까지 담은 총서가 발간되면 한국의 모든 논매기소리를 알 수 있는 총서가 완성된다.




단순한 질문이 출발점이었다. ‘농요는 언제 어디서 시작됐을까.’ 농요가 있을 만한 지역이면 녹음기를 들고 무작정 날아갔다. 중국과 일본·인도·이탈리아·미국·브라질·케냐…. 아시아와 아프리카·미주·유럽까지 안 가본 대륙이 없다. 대장정은 무려 23년간 계속됐다.



농요를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빈 주인공은 나요당(羅謠堂) 이소라(78) 민족음악연구소 소장. 이 소장은 37년간 농요를 연구해온 한국 민속음악 최고 권위자다. 처음부터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서울대 법학과를 홍일점으로 졸업했고 철학 박사 학위도 땄다.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서 모두 그만뒀다. 대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악 연구자가 되자’고 결심했다. 한번 결정하자 무섭게 집중했다. “민속춤을 공부하면서 속살까지 알고 싶어 굿거리장단에 맞춘 춤까지 배웠습니다.” 대전시 만년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 소장의 고백이다.

농요를 직접 마주한 것은 문화재청 전문위원으로 농요 지정 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에서 조사를 마치고 올라오려 하는데 읍사무소 직원의 한마디가 발목을 잡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네에 전혀 다른 농요가 있어요.’ 곧바로 풍양면 공처 마을로 달려갔다. 이 소장은 “마을 노인정에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데 통명과는 완전히 다르더라”며 “낙동강으로 교류 지역이 바뀌면서 농요도 달라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장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장



농요를 연구하는 일은 난제 그 이상이다. 가장 중요한 이는 선창을 하는 선소리꾼이다. 그가 노랫말을 하면 나머지가 후렴구로 대꾸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노랫말을 아는 이가 선소리꾼뿐이라는 점이다. 입으로만 전해오는 탓에 선소리꾼이 사라지면 농요도 소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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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 역시 장애 요인이었다. 논을 맬 때 부르는 논매기소리는 힘든 노동을 이겨내기 위함이지만 기계가 등장하고 제초제가 나오자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어졌다. “1980년대 중반 전북의 한 노인정을 갔더니 노인들이 한방 가득 있는데 아무도 논매는 소리를 모르더군요.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 소장에게 농요는 그 지역의 개성을 나타내는 얼굴이자 민중들의 역사다. 역사가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빨리 녹음이라도 해둬야 했다. 시군별로 3개 읍면을 선정해 녹음기 3대와 핀마이크까지 차고 매년 7~8차례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수집한 우리 노래가 책으로만 78권, 논문은 160여 편에 달한다. 이 공로로 2017년에는 정부에서 옥관문화훈장도 받았다.

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장이 2017년 정부로부터 받은 옥관문화훈장 앞에서 농요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장이 2017년 정부로부터 받은 옥관문화훈장 앞에서 농요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농요 연구는 다른 궁금증으로 연결됐다. ‘농요가 언제부터 불렸을까. 고대에 있었을까. 해외에도 존재할까.’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가야·삼국시대는 물론 다른 나라에 대한 연구도 필요했다. 1991년 일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조사에 나섰다. 미국에 다녀와서는 ‘북미 인디언 민요를 찾아서’라는 책도 냈다.

중요한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일본 오사카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을 때 아침·점심·저녁을 구분해 다른 농요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는 신라·가야 노래들과 비슷한 패턴”이라고 덧붙였다. 농요와 한국 고대사의 접점을 발견한 셈이다. 경북 영천과 경산을 중심으로 불렸던 농요가 삼한시대 진한의 부족국가였던 압독국(押督國)이 지배하던 지역과 겹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는 “논매기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부족국가 시대로 연결된다”며 “고대사나 고고학과의 공동 연구가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중요한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조만간 ‘강원도 논매기소리 총서’를 발간하고 서울과 북한 지역도 별책으로 담을 예정이다. 나머지 지역은 이미 발간이 끝난 상태다. 2015년 ‘충남 지역 논매기소리 총서’를 발간한 후 7년 만의 결과물이다. 한국의 모든 논매기소리를 담은 총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할 일이 아직 더 있다. 기회가 되면 상여소리를 정리하고 모심는 소리, 벼 타작 소리도 다룰 계획이다. 농약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도 희망 사항이다. 이 소장은 “우리 농요는 한국민의 개성을 나타내는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문화유산”이라며 “누군가 이 일을 해냄으로써 젊은 사람들도 우리 노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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