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동십자각]파는 쪽도 사는 쪽도 불안한…


며칠 전 예정에 없던 손님맞이로 퇴근길 급하게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와 안주용 냉동식품, 과자 몇 개를 샀다. 물건이 담긴 비닐봉지를 계산대에서 들어 올리려는데 사장님이 한마디 했다. “봉투 아래를 이렇게 손으로 받치고 가요.” 파는 쪽에서 불안해한 것은 내용물의 무게보다 그 물건을 담을, 최근 이 점포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친환경(생분해) 비닐봉지’였다.

지난달 24일부터 편의점과 카페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 규칙이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이 법은 매장 면적 33㎡를 초과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를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편의점들은 지난해부터 기존 플라스틱 비닐봉지를 친환경 봉투로 대체해왔다. 이후 친환경 비닐봉지 판매 금지도 예고되자 종이·종량제·다회용 봉투를 순차 도입하기로 하고 9월부터 비닐봉지 발주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규제 시행을 코앞에 두고 환경부가 ‘앞으로 1년 동안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계도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고, 친환경 비닐봉지도 2024년까지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친환경 봉투는종량제·다회용 봉투보다 저렴해 고객들이 더 많이 찾지만 내구성 면에서 만족도가 높지 않다. 이렇다 보니 폐기하려고 넣어뒀던 일회용 플라스틱 비닐봉지를 다시 꺼내거나 사입해 팔겠다는 점주들도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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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객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어 전환에 어려움이 없다’ ‘계도 기간과 상관없이 친환경으로 넘어가겠다’는 의견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봉투나 친환경 봉투가 물건을 많이 담는 데 한계가 있고 파손으로 물품이 손상되면 소비자와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대부분이 공감한다. 환경보호라는 대명제와 이를 위한 규제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현장을 반영한 세심한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것이다. 이번만 해도 편의점 업계는 일찌감치 새 규제에 대비했지만 환경부는 시행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계도 기간 검토’ 입장을 내비쳤고, 유예가 공식화하기 전까지 현장에서는 ‘그러면 같이 팔아도 되냐’ ‘일회용 비닐봉지 가격은 어떻게 하냐’는 등 혼선이 가중됐다.

환경부가 이번 규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유예 기간 이후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봉투 재질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현장의 의견 수렴 및 이를 반영한 세심한 대안 마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1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남은 일회용품 재고를 소진하는 기간에 불과하다. 업계의 불만과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흡했던 ‘디테일’을 손보는 시간으로 1년을 채워야 하는 이유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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