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를 열 사이클 넘게 받아도 효과가 없었던 유방암 환자 10명 중 6명 꼴로 이 약에 반응을 보입니다. 독한 약을 써도 반짝 효과를 보는듯 하다가 재발을 반복해 팔자 탓이라며 이름까지 바꿨던 환자가 암이 완전히 사라진 채 2년 가까이 외래진료를 보러오는 경우도 있죠. 이토록 좋은 약이 나왔는데 하루라도 빨리 쓰고 싶은 게 의사 마음 아니겠습니까.”
김성배(사진)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8일 서울경제와 만나 "재발과 전이가 잦은 HER2(인간상피성장인자수용체 2형) 양성 유방암에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ADC·Antibody Drug Conjugate)의 건강보험 적용이 시급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 교수가 언급한 차세대 ADC는 올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다. ADC는 암세포 표면에 발현되는 특정 단백질(항원)을 정밀하게 표적하는 항체(antibody)에 강력한 세포사멸 기능을 갖는 약물(payroad)을 링커(linker)로 연결한 새로운 개념의 항암제다. ‘유도미사일’ 역할을 하는 항체에 ‘핵탄두’인 항암제를 결합시켜 투여하는 원리다. 암세포를 정확하게 추적해 공격하면서도 정상 세포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췄다. 1세대 ADC 약물인 '캐싸일라(성분명 트라스투주맙 엠탄신)'보다 암치료 효과가 한층 강력해졌다. 김 교수는 "기존 항체 약물이 암세포 표면의 표적에 결합해 목졸라 죽이는 개념이라면 ADC는 비행기에 특공대를 실어 암세포에 침투시킨 뒤 독소를 방출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며 "1세대 ADC가 특공대 3.5명을 태워 보내는 효과였다면 2세대 ADC는 8명을 태워 보내는 수준으로 암세포 사멸효과가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암세포를 상대하는 전력이 8대 1로 강력해진 데다 세포막 투과성이 뛰어나 표적 종양세포를 사멸시킨 뒤에도 인접한 종양세포의 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처방을 받은 지 6개월 정도 지나면 내성이 생기거나 반응이 떨어졌던 기존 약물과 달리, 과거 10여 차례 다른 약물을 투여받았던 유방암 환자에서도 60%가량의 반응률을 보이고 치료효과가 2년 가까이 지속된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적응증인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진행성 위암 뿐 아니라 난치 유형으로 꼽히는 HER2 저발현 유방암에서도 기존 항암화학요법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무려 50%나 감소시켰다는 임상 데이터도 공개된 바 있다. 그 밖에도 HER2 양성 대장암, 폐암 등 다양한 암종에 대한 임상을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일본 연구진들의 요청으로 2016년 엔허투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했다. 그만큼 엔허투를 잘 안다. 김 교수는 "초기에는 간질성 폐렴 등 약물투여 반응을 예상치 못해 일부 환자가 폐독성 등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장기간 임상 연구를 거치고 사용경험이 쌓이면서 부작용을 관리할 수 있게 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다만 엔허투는 아직 국내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증상과 치료효과에 따라 1~2년 동안 3주 마다 한번씩 투여해야 하는데, 한 사이클을 투여 받는 비용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공급가 기준으로 대략 1200만~1500만원에 달한다. 비싼 비용 때문에 대부분의 유방암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상황이다.
김 교수는 "해외 논문이나 기사를 통해 엔허투의 놀라운 효과를 접한 환자들이 경제적 문제로 치료를 포기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며 "장기 임상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신약의 혜택이 국내 환자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