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시대의 상징과도 같던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회견)을 23일째 멈췄다. 정치적 상황을 볼 때 언론을 직접 만나는 형식의 도어스테핑은 연내 재개되긴 힘들어보인다. 연말 윤 대통령 앞에는 특별사면과 개각 카드가 놓여있다. 상당한 정치적 의미가 담길 사면과 개각은 신년을 전후해 결단해야 한다. 내용에 따라 파장이 2024년 총선을 좌우할 내년 초 국민의힘 전당대회까지 미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을 멈춘 최근 각계각층을 만나고 있는데 신년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묘책을 듣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나온다.
가벽으로 막힌 도어스테핑, 23일째 중단
대통령실 “연내 개시는 사실상 어렵다”
대통령실 “연내 개시는 사실상 어렵다”
대통령실 1층 기자실에서 윤 대통령의 출근길을 볼 수 있던 도어스테핑 장소는 10일 기준 21일째 가벽으로 막혀있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도 지난 18일에 이어 23일째 중단된 상태다. 당시 미국 뉴욕 순방 당시 ‘비속어 논란’ 보도를 한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이 공개된 장소에서 고성으로 설전을 벌인 사태가 기폭제가 됐다.
도어스테핑 중단을 알린 지난달 21일께만 하더라도 늦어도 2주 안에 재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자동문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10일이면 공사가 끝난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기류는 확 바뀌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재개를 빨리 하자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연내 재개는 힘들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대신 대통령실은 언론을 직접 만나는 도어스테핑 대신 오는 오는 15일 국민 패널 100명을 초청해 국정을 설명하는 국정과제점검회의를 개최하며 다른 방식을 예고하고 있다.
도어스테핑은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실이 설전을 벌인 기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이 도어스테핑 재개에만 초점을 맞추기엔 단순하지 않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尹, 취임 후 첫 신년, 정치적 메시지 고심
사면 통한 ‘통합’, 개각·개편으로 ‘쇄신’ 예측
사면 통한 ‘통합’, 개각·개편으로 ‘쇄신’ 예측
윤 대통령이 대외 행보를 자제한 채 연말 특별사면과 신년 개각을 위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실제로 친윤 의원들과 당 지도부, 나아가 종교계, 학계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지난 25일 관저에서 당 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졌고 29일에는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들을 만났다. 30일에는 과학기술 원로들을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했고 지난 1일에는 대학민국학술원 석학들과도 오찬을 가졌다. 5일에는 국가 조찬기도회를 찾아 종교계 인사들과 만났고 7일에는 한국법학교수회와도 간담회를 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권은 물론 종교계와 학계 원로들을 만나며 국정 방향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특별사면과 신년 개각을 위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부는 연말 특별사면 대상자를 정하기 위해 20일 사면심사위원회를 가동한다. 최종 결정은 헌법상 사면에 대한 고유 권한을 가진 윤 대통령만이 결단할 수 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신년 개각까지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연말 사면으로 국민들에게 통합을, 연초 개각으로 쇄신의 신년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통령실 개편까지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각에서는 20대 총선 직전 해인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델까지 거론되고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한 뒤 11일 만인 1월 23일 개각과 청와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완구 국무총리를 내정했고 청와대에 민정과 안보, 홍보, 사회문화, 정무 등 5개의 특보단을 신설했다. 개각으로 정부 조직을 다잡고 특보단을 신설해 정치권 및 각계와 접점을 넓히는 목적이었다. 윤 대통령이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까지 포함한 신년 구상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尹, 개각·개편 통해 전당대회 판 흔들지도
사면은 MB 유력, 김경수 등 野 인사 검토
개각, 연초 野와 인사청문회 정국 우려도
사면은 MB 유력, 김경수 등 野 인사 검토
개각, 연초 野와 인사청문회 정국 우려도
특히 윤 대통령의 개각이 여당 전당대회의 구도마저 흔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개각을 설 명절 전후인 1월 중하순에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내년 3월께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년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대표와 지도부는 2024년 총선의 공천권을 쥐게 된다. 차기 총선의 결과가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과 직결되는만큼 윤 대통령 역시 개각을 한다면 당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유력 당권주자를 신임 총리에 지명할 것이라는 억측까지 제기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도 2015년 신년 개각 때 원내대표이던 이완구 전 총리를 내정했다. 윤 대통령이 개각을 통해 당권주자 정리에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개각이 전당대회에 큰 영향을 미치면 일부 당권 주자들이 반발할 여지도 있다.
개각은 입법권을 쥔 거대야당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이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이 장관을 뺀 개각이 이뤄질 경우 통합은커녕 연초부터 야당과 부딪힐 수 있다. 신년부터 내부 반발과 야당의 극렬히 반대하는 인사청문회 정국이 동시에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년 사면 역시 지지율을 흔들 수 있다. 사면을 단행한다면 관건은 소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 야권 인사들에 대한 사면과 복권 여부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야당 지도부와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최근 당 지도부를 관저에서 비공개로 만난 것을 두고 야당이 “협치를 포기한 비밀 만찬”이라고 쏘아붙이는 뒷면에는 이 같은 상황이 있다. 윤 대통령이 연말 김 전 지사를 사면하면서 협치의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지사의 사면을 두고 지지층 일부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도층을 잡으려다 지지층이 동요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김 전 지사의 사면을 두고 당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복권 없는 사면이라는 방식을 고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지사는 사면되더라도 복권이 이뤄지지 않으면 2028년 5월까지는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정치권은 윤 대통령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상세일즈외교와 화물연대 파업 강경 대응 등으로 보수층과 일부 중도층에 호응을 지지율이 38.9%(리얼미터)~41.5%(여론조사 공정)까지 오르고 있다. 신년에 40%대의 안정적 지지율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국정운영은 물론 국민의힘 전당대회, 멀리는 내년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신년 개각과 사면이라는 고도의 정치행위를 하면서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 야당까지 잡을 묘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국민들은 평등한 집행을 원하고 있고 정치인 사면에는 늘 부정적인 여론을 보여왔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는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다만 개각은 쇄신으로 새로운 국정동력을 얻기 위해 유력하게 감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