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는 16일째 이어가던 집단 운송 거부를 9일 오후 전면 철회했습니다. 전체 조합원 투표 결과 철회 찬성 표는 2211표(61.84%)로 집계됐습니다. 화물연대는 이달 말 일몰을 맞는 안전운임제를 영구화하기 위해 집단 운송 거부에 나섰지만 소득은 전무합니다. 오히려 정부가 집단 운송 거부 이전에 약속했던 ‘안전운임제 3년 연장’도 얻어내지 못할 처지입니다. 이렇게 화물연대가 ‘백기 투항’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①업무개시명령으로 강경 대응
정부 안팎에서는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이 집단 운송 거부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시멘트 운송 사업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습니다.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해 화물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한 데 따른 조치입니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도입됐지만 실제 활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업무개시명령 직후 물동량은 급격히 회복됐습니다. 집단 운송 거부 이후 25%(지난달 28일)까지 떨어졌던 부산항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1일 오전 기준 평시 대비 78%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전국 12개 항만 컨테이너 반출입량 역시 같은 기간 21%에서 64%까지 올랐습니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에 거세게 반발했지만 정부는 강경 대응 기조를 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법 행위에 엄정 대응’이라는 원칙은 더 분명해졌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화물연대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②“경기 최악인데”… 등 돌린 여론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집단 운송 거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한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화물연대 및 지하철노조 파업 관련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는 응답이 58%에 달했습니다. ‘노조의 정당한 단체행위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은 34%에 그쳤습니다.
화물연대 덕분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6~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를 물은 결과 긍정 평가는 33%로 전주 대비 2%포인트 오른 반면 부정 평가는 59%로 전주 대비 1%포인트 떨어졌습니다. 긍정 평가는 11월 3주 29%, 11월 4주 30%, 12월 1주 31%로 계속 상승세입니다. 긍정 평가 이유로는 24%가 ‘노조 대응’을 꼽았습니다.
집단 운송 거부로 경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철강 분야의 출하량은 평소의 50% 정도이며 석유화학 분야의 수출 물량은 평소의 5% 정도에 불과하다”며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 분야의 손실액이 3조5000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③안전운임제 논의 향방은?
민주노총은 전날 ‘화물연대 총파업 종료에 대한 입장’ 성명을 내고 “화물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는 이제 국회 논의 등 새로운 단계로 돌입했다”며 “전 조합원이 화물연대 파업에 보탰던 진정성으로 투쟁해 쟁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안전운임제 논의도 화물연대에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부 여당이 11월 22일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제안하기는 했으나 화물연대가 집단 운송 거부에 돌입했기 때문에 제안은 무효화됐다”며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 논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불가하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안전운임제 존폐 자체를 재논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김수상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안전운임제의 안전 개선 효과와 근로 개선 효과 등을 종합 고려해서 논의해야 한다”며 “화물 운송 시장이 다단계 구조 등으로 많이 왜곡돼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해 화물차주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몫을 늘리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