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 전문 A 바이오벤처는 글로벌 기술 수출에 성공하며 한 때 기업 공개(IPO) 시장 대어로 꼽혔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거래소에 청구한 예비심사가 반년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결국 자진철회 결정을 내린 뒤, 사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문제는 갈수록 IPO 이외에 추가 펀딩조차 어려워지자 초기 투자에 참여한 벤처캐피탈(VC)이 직원 40% 감원과 신약 개발 기기 처분까지 요구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한 때 유망 바이오로 꼽히던 A 바이오벤처 연구소에 있는 장비들에 온통 빨간 딱지가 붙어있는 모습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며 고개를 떨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침체 공포가 K바이오에도 불어닥치면서 임상 중단, 인력 구조조정 등 긴축 방안이 현실화하고 있다. 내년에도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한 경기 불확실성이 커져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가장 먼저 바이오 기업의 미래 먹거리인 파이프라인부터 축소됐다. 보릿고개를 넘어가기 위한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 지난 6일 지놈앤컴퍼니(314130)는 독일머크·화이자의 면역항암제 ‘바벤시오’와 병용투여한 고형암 임상 1·1b상에 대한 조기 종료를 발표했다. 서영진 지놈앤컴퍼니 대표는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 어려운 외부환경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면밀히 검토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나선 기업들은 개발 포기가 속출하고 있다. 다음 감염병 유행에 대비해 기술을 확보해 놓겠다던 기업들도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지난 9일 대웅제약(069620)은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카모스타트'(DWJ1248)에 대한 임상 시험을 중단하며 국내에서 진행하던 코로나19 치료제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지난달 동화약품(000020)이 정부 지원을 받아 개발 중이던 코로나19 치료제의 임상을 중단한 바 있다.
올해 하반기에만 박셀바이오(323990), 메드팩토(235980), 크리스탈지노믹스(083790), 파멥신(208340) 등이 다른 임상에 들어갈 비용을 절감해 주력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임상 단계에 있는 파이프라인은 아예 임상 진입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판교이 있는 항체 신약 B 바이오벤처 대표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글로벌 임상시험은 꿈도 못 꾼다.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선택, 집중하면서 비용 지출을 최소화 하고 있지만 투자업계 분위기가 언제 달라질지 몰라 답답하다"며 토로했다. 국내 임상수탁기관(CRO) 관계자는 "특히 큰 비용이 드는 항암 임상이나 글로벌 빅파마에서 라이선스 인 검토를 하지 않을 희귀질환의 경우 임상 추진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전했다.
운용비 축소와 인력 구조조정도 시작됐다. 최근 SK바이오팜(326030)은 세노바메이트의 글로벌 판매 약진에도 불구하고 장기화된 적자 탈출을 위해 각 부서별 운용비용 절감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바이오벤처 C사는 상장 전 투자 유치(Pre-IPO)에 실패하면서 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이전 기업 가치의 절반 수준으로 자금을 수혈했다. 당연히 핵심 파이프라인 연구원을 제외한 지원 인력 60% 이상을 감원했다. C사 관계자는 "문제는 구조조정만이 아니라 핵심 인재들이 추가로 사직하면서 도저히 임상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으로 사업이 올스톱했다"고 말했다.
실제 바이오로 유입되는 투자금은 메랄라지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의료·바이오 업계로 유입되는 신규 투자금은 올해 3분기까지 8979억 원으로 지난해 전체 1조 6770억 원과 비교해 크게 쪼그라들었다. 화학, IT 등 분야와 비교한 비중 또한 2020년 27.8%에서 지난해 21.8%, 올해는 16.3% 수준으로 감소했다. 통계청 기준 의료바이오 채용인력도 지난 1월 1591명에 비해 9월 1217명, 10월 1333명으로 감소세다. 특히나 체용계획은 10월 540명으로 연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몇년간 투자가 늘어나 신규 바이오기업도 늘어난 만큼, 축소된 투자금으로 후속 투자를 받을 기업은 줄어드니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이승호 데일리파트너스 대표는 "바이오벤처에게는 무형 자산인 특허가 가장 중요한데, 투자 위축으로 인해 임상이 지연되면 특허 가치 훼손에 따른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며 "국내 바이오기업의 중장기적인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정책 자금과 IPO 확대와 같은 정부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