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巨野)·친문(親文)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종착지’에 근접하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격·대장동·위례동 개발사업 특혜 등 각종 의혹을 수사면서 핵심 인물을 구속 기소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재판에 넘긴 이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이거나 문재인 정부 당시 ‘실세’라 검찰이 수사 범위를 무한 확장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는 지난 9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서 전 실장을 지난 3일 구속한 지 단 엿새 만이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고위 인사 가운데 재판에 넘긴 건 서 전 실장이 처음이다.
서 전 실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피격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합참 관계자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보안 유지’ 조치를 하라고 지시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20년 10월까지 ‘월북 조작’을 위해 국방부와 해경이 보고서와 발표 자료 등을 작성하도록 하고, 안보실 차원에서 해당 내용의 허위 자료를 재외공관·관련 부처에 배부하도록 한 혐의도 있다. 서 전 실장은 피격 사실 은폐는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또 당시 자진 월북 판단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관련 첩보를 종합해 내린 정당한 정책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검찰은 대통령 기록관 압수수색 등 수사 결과, 서 전 실장 등의 행위에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도 같은 날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부패방지법 위반, 특가법상 뇌물, 부정처사후수뇌, 증거인멸교사죄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대표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건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이어 정 실장이 두 번째다. 그는 2013년 2월~2020년 10월 성남시 정책비서관·경기도 정책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으로부터 각종 사업 추진 등 편의 젝공 대가로 7회에 걸쳐 총 2억4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또 대장동 사업 특혜 제공 대가로 지난해 2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 민간업자들의 보통주 지분 가운데 24.5%를 나눠 갖기로 약속하고, 2013년 7월~2018년 1월 위례 신도시 개발 사업에서 비공개 내부 자료를 유출, 210억원 상당의 이익을 챙기게 한 혐의도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거여·친문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여전히 종착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사정 칼날이 어느 선까지 이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대장동·위례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경우 결국 이 대표까지 수사가 확대된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검찰은 33쪽 분량의 공소장에서 이 대표·정실장 관계를 ‘정치적 동지’로 서술했다고 알려졌다. 또 ‘시장·도지사 최측근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한 정 실장이 관할 지역 민간업자와 유착해 거액의 사익을 취득하는 등 지방자치 권력을 사유화한 중대범죄’라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이 대표와의 공모 관계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정 실장이 수수한 돈의 용처, 대장동 잔여 사건을 포함해 의혹 전반을 계속 수사할 계획’이라며 이 대표에 대한 수사 여지는 남겼다. 이정근 민주당 사무부총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도 수사 범위 확대가 점쳐진다. 이 전 부총장 공소장에는 전 정부 당시 청와대 고위급이나 유력 국무위원, 당시 여당 국회의원 등 실명이 대거 등장한다. 게다가 검찰이 핵심 인물의 휴대전화기에서 녹취파일 수만개를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알려지면서 ‘거야·친문을 둘러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 실장을 기소한 검찰은 공소 준비 등을 위해 한동한 숨고르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검찰이 오랜 기간 계좌추적을 한 만큼 이 대표에 대한 배임·부패방지법 위반 등 혐의 수사가 내년 초부터 본격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쌍방울의 대북송금 의혹 수사의 경우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을 기소했으나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일각에서는 한층 윗선까지 수사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들 사건과는 달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수사선상에 올리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 영장에 문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않는 등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최고 책임자를 서 전 실장으로 보는 기류가 검찰 내 흐르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 전 대통령 수사에 따른 격해질 수 있는 정치적 논란도 부담요소로 꼽힌다. 검찰이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으로 수사 범위를 수평확장할 수는 있으나 더 윗선으로 확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