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한 금융 당국의 중징계가 잘못됐다며 손태승(사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 당국이 ‘라임 펀드’ 사태로 손 회장에게 또 다른 중징계 처분을 내린 상황이지만 DLF 중징계가 잘못됐다는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만큼 이 역시 다시 따져볼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손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임 불가 주장의 가장 중요한 근거였던 ‘내부 통제 문제는 최고경영자(CEO) 책임’이라는 논리가 법원에서 깨진 만큼 앞으로 거취와 관련한 ‘운신의 폭’이 다소 늘어났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당장 16일 열리는 우리금융지주 이사회의에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5일 손 회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문책 경고 징계를 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금감원은 우리은행의 과도한 영업과 내부통제 부실이 DLF의 불완전 판매로 이어졌다고 판단해 손 회장을 문책 경고 처분했고, 손 회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과 2심 모두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징계 처분 사유가 아니라는 취지로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행법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아닌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준수 의무 위반은 구별돼야 한다는 점을 대법원이 최초로 설시했다”고 판단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대법원 판결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상 내부통제 기준 설정·운영 기준을 내부통제 기준의 실효성 판단 기준으로 인정받았다”면서 “향후 대법원 판결 내용을 잣대로 금융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함께 내부통제의 실효성 제고 방안 마련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거취를 두고 장고를 거듭해 온 손 회장의 ‘결심’이 이번 판결 결과를 계기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손 회장은 라임 사태와 관련해서도 중징계를 처분을 받은 상태다. 징계 결정 과정에서 DLF 사태와 적용된 법이 달라 결과까지 같을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는 있다. 하지만 ‘내부통제 부실로 발생한 사고의 최종 책임자는 CEO’라는 징계 이유는 유사하다. 라임 사태에 따른 당국의 중징계 처분 역시 이번 판결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 당국이 라임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손 회장 입장에서 유사 소송의 판결이 유리하게 나온 만큼 추가 징계 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결정으로 손 회장의 거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당국과 연이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부담이지만 손 회장이 법적 대응에 나서지 않을 경우 배임 등의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라임 펀드 제재안을 수용하면 부당 권유 확정으로 약 150억 원 수준의 배상금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 소송 없이 그냥 징계를 받아들이면 배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새 정부에서 5대 금융지주 중 두 명의 CEO가 바뀔 정도로 ‘연임 불가’ 분위기가 강한 상황에서 우리금융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손 회장이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손 회장이 DLF 사태와 관련해 최종 승소한 만큼 소송 비용 등도 회사 측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사법 리스크 일부를 해소한 지금 시점이 거취를 표명하기에도 가장 좋은 시기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