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의 지배구조를 유지해오던 영풍그룹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010130)의 지분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고(故) 장병희, 최기호 창업주가 영풍그룹을 설립한 이후 고려아연 계열 회사들은 최 씨 일가가, 코리아써키트(007810) 등 전자 계열은 장 씨 일가가 맡아왔으나 각자 지분을 매입하며 계열분리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전일 공시에 따르면 최창걸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 등의 고려아연 지분은 기존 46.17%(917만 1302주)에서 46.85%(930만 6395주)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 씨 일가 지분이 많은 영풍정밀(1만 7611주)과 박 씨(1150주) 등도 올해 9월부터 12월에 걸쳐 2만 1424주(0.12%)를 사들였다. 금액으로 따졌을 때 약 132억 원 규모다. 이로써 최 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은 28%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장병희 창업주의 손자이자 장형진 영풍 고문의 장남인 장세준 대표가 이끌고 있는 코리아써키트도 올해 9월부터 12월에 걸쳐 고려아연 지분을 약 689억 원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 씨 일가 측은 코라아써키트(5만 2941주), 테라닉스((4만 9728주) 에이치씨(1만 1000주) 등 그룹 계열사를 활용해 고려아연 지분율을 기존 31.3%에서 32%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까지 고려아연 지분은 장 씨가 10%포인트 이상 많이 보유하고 있었으나, 최 씨 일가의 꾸준한 매입으로 지분율 격차는 최근 4% 수준까지 좁혀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 씨 일가는 LG화학, 한화 등과도 손을 잡고 계열분리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LG화학은 고려아연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2576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하기로 했다. 한화와도 사업 제휴를 맺고 1568억 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한 바 있다.
지분경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로 최 명예회장을 비롯해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3명의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현행 이사회는 최 씨 일가 측에 더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명부폐쇄일(12월 31일)까지 주식을 보유해야 표결에 참여할 수 있어, 연말까지 지분 확보전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앞서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 씨와 장 씨 일가 간 지분율 차이가 축소됐다”며 “계열분리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명확히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추후 추가 지분 확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