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의 여파가 중도금대출에까지 미치면서 꽁꽁 얼어붙은 청약 시장은 ‘미분양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부 저축은행의 신규 중도금대출금리가 10%를 넘어서면 이자 부담이 커진 청약 대기자들이 청약 자체를 포기하게 되고 시행사도 중도금대출 무이자 등의 금융 지원을 쉽사리 내걸지 못하면서 청약 시장이 사실상 빈사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SBI저축은행은 신규 중도금대출의 최저 가이드금리를 각각 10.00%(고정금리 기준)와 9.40%(변동금리 기준)로 이전 대비 1.55%포인트씩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SBI저축은행 리스크관리팀은 사내 공지에서 “2023년에도 인상 기조는 당분간 이어져 각 금융기관의 어려운 경영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조달 원가의 지속 상승으로 2022~2023년 이자 마진 관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10%를 최저금리로 내세운 것은 사실상 중도금대출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도 보인다”며 “이를 부담하며 분양을 진행할 만한 단지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중도금대출금리 인상은 곧바로 수분양자 부담이 된다. 예를 들어 분양가 10억 원인 아파트 청약 당첨자가 분양가의 60%인 중도금을 연이율 10%로 대출받아 5개월마다 6회 차에 걸쳐 약 3년간 납입할 경우 중도금대출 이자만 약 9200만 원이 발생한다.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발코니 확장 등 옵션 비용을 추가하면 수분양자가 실제 부담하는 집값은 분양가를 훌쩍 웃도는 12억 원 상당이다.
특히 최근 분양 단지들의 청약 성적이 저조하자 1금융권에서 중도금대출이 거절돼 금리가 더 높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중도금대출을 실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건설사의 관련 공시를 분석한 결과 올 들어 2금융권이 중도금대출을 진행한 단지만 50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분양률이 미진한 현장은 중도금대출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축은행으로 간다”며 “1금융권은 중도금대출을 보수적으로 진행해 아파트가 아닌 오피스텔 등에도 중도금대출을 잘 실행하지 않는데 분양률이 낮은 아파트에 중도금대출을 진행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분양가도 1금융권의 중도금대출 실행을 막는 요인이다. 분양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 수준(12억 원)을 넘는 경우 1금융권에서는 시행사 자체 보증이 있더라도 중도금대출에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철근을 비롯한 건설 원자재 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무작정 분양가를 12억 원 미만으로 내리기는 어렵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3.3㎡(평)당 분양가는 지난해 2798만 원에서 올해 3474만 원으로 24.2% 급등했다.
이처럼 2금융권을 통해 중도금대출을 받으면 금리가 높아져 시행사가 수분양자를 유인하기 위해 내놓던 ‘중도금대출 무이자’ 혜택 등을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이는 수분양자가 부담해야 할 중도금대출 이자를 시행사가 대납하는 구조인데 가구당 1억 원에 육박하는 이자를 시행사가 떠안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미분양이 중도금대출 이자 급등을 부르고 이로 인해 다시 청약 시장이 침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업계 일각에서는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청약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로 분양가가 12억 원을 넘어서는 전용면적 84㎡의 중도금대출 이자가 10%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는 점을 들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과거에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아 고분양가가 가능했기 때문에 건설사들도 할인 분양이나 중도금대출 무이자 등을 할 여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분양을 완료한 단지도 안심할 수는 없다. 통상 분양가는 계약금(10~20%), 중도금(40~60%), 잔금(20~50%)으로 나눠 지급된다. 대부분의 수분양자는 청약 계약 당시 받은 중도금대출을 입주 시점에 잔금대출로 전환하는데 기존에 받은 중도금대출보다 더 많은 금액을 대출받아 잔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는 단지에 대한 감정평가액이 낮아져 잔금을 대출로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부동산 상승기에는 분양가 10억 원 아파트의 감정평가액이 13억~14억 원까지 치솟아 수분양자가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이 9억 원을 넘겼다면 하락기에는 감정평가액이 분양가 수준에 그쳐 대출로 잔금을 납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세입자를 구해 보증금으로 잔금을 납부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전세 가격 하락과 역전세난에 대한 우려로 원하는 가격대에 전세를 놓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입주 시점에 입주를 포기하거나 잔금을 납부하지 못해 입주 시기를 넘기는 사례가 급증할 것으로 건설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전국에 입주 예정인 아파트만 약 33만 9000가구이며 오피스텔도 4만 7000가구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