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서경이 만난 사람] 윤성용 관장 "美·英 주요박물관 한국실 전시·인력 지원…K컬처 확산 힘쓸것"

[서경이 만난 사람-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대담=박태준 문화부장

해외 68개 한국실 사업, 올부터 문체부서 중앙박물관으로 이관

'이건희 컬렉션' 美 시카고 등 전시 예정…국내 순회전도 지속 추진

명품 청자 엄선한 '고려비색' 감상 공간은 '사유의 방' 이어 호평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국립박물관은 그 나라 문화의 얼굴입니다. 해외에서는 외국 박물관의 한국실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현재 23개국 68개 박물관이 한국실 혹은 한국 코너가 있는 전시실을 두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한국실 지원 사업을 이관받아 과거 전시품 지원 사업에 국한됐던 것을 한국실 개선, 전담 인력 고용, 전시 지원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문명의 꽃이라 불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박물관의 한국실을 ‘K컬처’ 확산의 전초기지로 삼기로 하고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윤성용(56·사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내년에는 영국박물관·휴스턴박물관의 전시품 교체 등 전시 개편이 예정돼 있다”면서 “미국 중부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덴버박물관에서는 분청사기전이 개최된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한국실에 대한 중장기 지원관으로 미국 시카고박물관·클리블랜드박물관 등이 선정됐으며 단기 지원관으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퍼시픽아시아박물관, 영국 스코틀랜드국립박물관 등이 선정돼 총 7개관을 올해부터 신규 지원하기 시작했다”면서 “내년부터는 총 6개국 17개관의 한국실에서 K컬처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후 국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물관·미술관으로 몰렸고, 특히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기증품 전시 ‘신드롬’까지 가세해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윤 관장에게 대중문화 한류로 촉발된 열기를 ‘K컬처’로 확장시킬 방안과 기증품의 체계적 활용 계획 등에 대해 물었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잘 아시겠지만 올여름 한중 공동으로 추진한 특별전에서 중국국가박물관이 우리 고대사를 왜곡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상호 신뢰 관계 속에서 진행된 특별전이었음에도 중국 측에서 우리가 제공한 자료를 사전 협의 없이 임의로 작성해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늦었지만 한국사 연표의 문제를 인지한 후 즉각적인 수정과 사과를 요구했고 문제의 연표를 철거한 뒤 간접적 유감을 표시했습니다만 여러 면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해외에서 선보이는 우리 문화재, 나아가 해외 박물관 한국실에서 전시되는 우리 문화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전시 작품만 챙기는 일은 표피적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 즉 인력이다. 윤 관장은 “한국실 운영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해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 방식을 세분화해야 한다”며 “한국실 확장과 개선뿐만 아니라 전시, 교육, 보존 처리 등 한국실 콘텐츠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실 담당 전문 인력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실 전담 인력 지원과 관련해 올해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 독일 훔볼트재단의 신규 큐레이터 채용을 도왔고 향후 개최될 전시를 협의하고 있다. 미국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의 한국실 전담 인력 채용도 진행하고 있다. 일찍이 유학길에 올라 현지에서 뿌리를 내린 한국인 인재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을 큰 무대로 끌어낼 수 있는 기회다. 다만 윤 관장은 한국실 지원 업무와 예산 규모가 기존에 비해 10배가량 늘어났지만 박물관 내부 운영 인력이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 최고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해 4월 삼성가(家)로부터 기증받은 2만 1693점, 일명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국내외 러브콜이 특히 많다. 국내의 경우 티켓 예매 전문 사이트 인터파크가 집계한 2022년 전시 관람 트렌드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이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문화 트렌드가 내수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 주목을 받는 상황이어서 해외 미술관·박물관에서도 전시 의뢰가 이어졌다. 박물관은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이건희 컬렉션의 국외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 윤 관장은 “미국 내 주요 박물관 여러 곳과 협의 중이다. 2026년 봄 미국 시카고박물관의 전시가 확정됐으며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프리어&새클러갤러리로 잘 알려진 미국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과도 특별전 개최를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이 모두 포함됐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흥행 보증수표’가 된 이건희 컬렉션 전시는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한창이고 내년에는 국립청주박물관·국립대구박물관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중앙박물관 산하 13개 지방 국립박물관을 통해 전시해달라는 요청은 많지만 유물 보존을 위해 전시 기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난제가 있다. 윤 관장은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위해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이 회장의 기증품을 볼 수 있게 해보자’는 것은 기증자와 기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부터 나왔던 얘기”라고 강조하며 “대규모 전시가 아니더라도 유물의 출토지 등 연고가 있는 지역, 지방 박물관의 대표 문화재나 지역 특성과 연관 있는 문화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더라도 특색 있고 알찬 전시를 만들 수 있게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관련기사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박물관은 이달 초 이건희 컬렉션 중 1만 7642점을 정리한 분야별 목록집 9권을 누리집을 통해 공개했다. 이 회장의 기증품 중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처럼 특징이 뚜렷하고 국보·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많지만 토기처럼 비슷하게 생겨 구별은 물론 시대와 출토지를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은 유물이 상당하다. 목록화가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기증받은 국가기관 중 처음으로 80% 이상의 목록집을 발간했다. 윤 관장은 이 작업에 전시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그동안 개인 수집품으로 관리된 유물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량이 워낙 많아 우리 박물관 연구직뿐만 아니라 소속 기관의 전공자, 국립중앙도서관 등 유관 기관까지 긴밀하게 협조했다”면서 “공개된 목록집을 통해 관심 있는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심화한 연구 성과를 내놓을 수도 있으며, 특히 방대한 양의 고문서는 시간을 두고 분석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내용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2025년까지 총 19권의 이건희 컬렉션 목록집과 자료집을 발간하고 소장품 기초 등록 이후에는 기증품 전체를 온라인 e뮤지엄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26년째 ‘박물관 사람’이지만 관장으로는 이제 막 6개월을 넘긴 윤 관장은 그간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지난달 새 단장해 개관한 청자실을 꼽았다. 박물관의 대표 유물을 내세우는 브랜딩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삼국시대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모신 ‘사유의 방’을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청자실 내 고려청자를 엄선한 ‘고려비색’이라는 몰입형 감상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그는 “올해 연간 관람객이 300만 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는데 그중 60만 명이 ‘사유의 방’을 들렀고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그 분위기를 이어갈 ‘고려비색’에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고려청자의 백미인 비색청자, 그중에서도 정교함이 절정인 상형청자 18점을 볼 수 있다. 세계인들도 인정하는 명품 문화유산을 더 많은 분들이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늘었지만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관람객의 비중은 50~60대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물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한 공포 연극 ‘야간괴담회’를 기획했고 문화재 복원처럼 심리 상태를 어루만진다는 의미로 ‘마음복원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미래 관람객인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박물관의 공간 확장, 경험 확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2005년 처음 개관한 어린이박물관은 초기 연간 관람객 23만 명에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는 42만 명까지 치솟았다.

“박물관을 옛날 물건들을 보여주는 곳, 공부하는 곳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박물관은 노는 곳입니다. 함께 노는 대상이 과거인데, 과거와의 만남 속에서 현재의 나를 돌아볼 수도 있고 잠시 여유가 된다면 나의 미래도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내가 놀았던 지금의 이 흔적을 200년 후의 미래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도 생각할 수 있고요. 어려워하지 말고 박물관으로 오세요.”

He is…

△1966년 경북 영천 △1985년 경북대 사학과 △1995년 경북대 대학원 한국사 석사, 박사과정 수료 △1997년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팀장 △2012년 국립청주박물관장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기획부장 △2018년 국립민속박물관장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2022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장


정리=조상인 미술전문기자·사진=성형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