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용 배터리의 4대 소재 중 하나인 동박이 올 하반기 들어 5개월 연속으로 수출 역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가파른 성장이 예상되는 배터리 시장에서 주요 소재의 수출 감소는 이례적이다. 동박 주 원료인 구리 가격이 경기둔화 속에 하락한 데다 중국이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가뜩이나 내년 경기침체 우려에 직면한 국내 제조업이 중국의 증설 공세로 인해 실적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8일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동박 수출규모는 11월 기준 5354만달러(약 68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달에 비해 4.6% 감소했다. 수출량은 381톤으로 같은 기간 7.4% 늘었지만 제품 가격이 하락한 탓에 전체 수출 금액이 쪼그라들었다.
동박 가격 하락은 중국 증설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중국의 동박 생산능력은 올해 26만9000톤 확대되며 연말에는 생산능력이 63만2000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1년 만에 생산능력이 74%나 급증하는 셈이다. 현재 글로벌 동박 시장은 SKC, 일진머티리얼즈 등 한국 기업과 중국 왓슨, 대만 창춘 등 중화권 업체가 양분하고 있다. 경기둔화에 따른 주 원료인 구리 가격 하락세도 동박 판가가 떨어지는 데 한몫했다.
다른 주요 배터리 소재가 가파른 성장세를 그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4대 소재 중 하나인 양극재의 경우 11월 수출 규모가 11억69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98%나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시장 확대로 올해 소재 업계도 실적 성장을 누려왔다”면서도 “하반기 들어 동박의 수출 부진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배터리 소재를 사업 부진의 돌파구로 찾은 화학 업계는 좌불안석이다.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분야에선 이미 중국 증설로 인해 적자까지 내고 있는 실정이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 423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내년에는 중국이 플라스틱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 생산 규모를 11.7% 늘린 5240만톤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공급 과잉이 업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내년 글로벌 에틸렌 연간 생산규모 예상치는 전년 대비 4.2% 증가한 2억2700억톤인 반면 수요는 1억9300톤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협 국제통상연구원은 내년 석유화학 수출이 올해 예상치(561억달러)보다 9.4% 줄어든 508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 등 다른 산업계도 중국의 공세에 긴장하고 있다. 한국이 독점해오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분야에선 후둥중화와 같은 대형 조선사에 이어 양쯔장조선과 CMHI 등 중형 조선소도 건조에 나서며 생산능력을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LNG 운반선은 현지 발주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국내 조선소 도크가 가득 차면서 중국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액정표시장치(LCD) 수출 규모는 2017년 180억달러에서 2021년 69억달러로 급감했다. 올해에는 3분기까지 48억달러를 수출하는 데 그쳐 역성장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는 오는 31일자로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7세대 TV용 LCD 생산 공장의 가동을 종료한다. 이로써 한국산 TV용 LCD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