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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통제의 상징서 쉼의 공간 되다

[인왕산 숲속쉼터]

 김신조 사건으로 설치됐던 인왕산 초소

 작년 일반인 산행길 휴식 장소로 탈바꿈

 헬리콥터로 각종 건축재료 옮겨 리모델링

 상부 목구조 건축물로 자연 친화적 느낌

 벽면은 직사각형 넓은 창…개방감 극대화

 과거 '폐쇄·통제' 벗어나 시민들 안식처로

인왕산 숲속쉼터. 김용순 사진작가인왕산 숲속쉼터. 김용순 사진작가




지금으로부터 약 54년 전인 1968년 1월. 북한의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해 경찰과 민간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경 합동 수색진의 추격 끝에 28명이 사살되고 1명을 생포했지만 2명은 끝내 찾지 못해 도주한 것으로 간주되며 작전은 종료됐다. 무장 게릴라가 침투한 날짜를 따 ‘1·21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유일하게 생포됐던 북한 공작원 김신조의 이름을 따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사건의 여파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1·21사태 이후 인왕산과 북악산에 30여 개의 군 초소와 경찰 초소가 들어서면서 오랫동안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통제를 이어가던 정부는 1993년에야 인왕산을 일반에 다시 공개했으며 초소의 수도 점차 줄여 2018년 한양도성 성벽에 설치된 20개 경계초소 중 18개를 철거했다. 남은 2개소는 역사 기록 차원에서 보존을 결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보존을 위해 남겨진 군 초소 1곳이 지금은 시민들을 위한 쉼터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2021년 11월에 일반에 개방된 ‘인왕산 숲속쉼터’다.

인왕산 등산로 중턱에 위치한 인왕산 숲속쉼터는 과거 초병의 거주 공간이었던 인왕3분초의 기존 철근 콘크리트 필로티 위 상부 구조물을 철거하고 대신 상부에 목구조 건축물을 더해 재구성했다. 건축은 조남호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소장과 김상언·김은진 에스엔건축사사무소 소장이 담당했다. 조 소장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역사적 흔적을 남기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보존하고 어떤 것들을 없앨지 여부였다”며 “결과적으로는 기존 초소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필로티 공간만 남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왕산 숲속쉼터로 재탄생하기 전 인왕3분초의 모습. 김용순 사진작가인왕산 숲속쉼터로 재탄생하기 전 인왕3분초의 모습. 김용순 사진작가



인왕산 숲속쉼터는 겉모습부터가 독특하다. 목재로 만들어진 지붕 위에 회색 알루미늄 틀이 덧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알루미늄 그레이팅(Aluminum grating)이라는 다소 낯선 방법을 이용해 외관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레이팅이란 마치 하수도 덮개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모양을 뜻하는데 인왕산 숲속쉼터의 지붕에 바로 이를 적용했다. 조 소장은 “지붕은 여러 가지 목적을 갖고 있는데 지붕의 형태와 기능을 분리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지붕이 방수와 단열 등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도록 강한 햇빛과 영하 40도 상당의 추위도 견딜 수 있는 방수지를, 동시에 전형적인 지붕의 모양에서 벗어나면서도 외관이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틈이 없는 꽉 닫힌 지붕이 아니라 그레이팅 방식을 적용했다. 조 소장은 “기존 초소의 지붕은 빗물을 막기 위해 지붕의 골(면이 만나는 모서리)에 덮개를 더했다면 인왕산 숲속쉼터는 숨 쉬는 지붕을 구현함과 동시에 물과 바람까지 자연스럽게 통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붕의 모양을 이전 인왕3분초와 유사하게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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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숲속쉼터를 짓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바로 위치였다. 산 중턱에 조성된 탓에 각종 건축 재료를 옮기는 것이 여의치 않았고 레미콘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미리 형태를 제작한 뒤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프리패브(pre-fab) 방식을 채택했다. 재료 운반은 헬리콥터를 이용했다. 조 소장은 “무게나 바람 등의 이유로 거대한 나무판을 헬리콥터로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해 크기를 일부러 줄여서 갖고 왔다”며 “헬리콥터 이용 비용은 물론 당시 인근에 청와대가 있어 경호처의 허가도 받는 등 꽤 도전적인 상황이었다”고 웃어 보였다.

실내에서 바라본 인왕산 숲속쉼터. 김용순 사진작가실내에서 바라본 인왕산 숲속쉼터. 김용순 사진작가


사실 건축 재료로 목재를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목재는 주로 ‘선’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는 데다 다른 목재와 연결짓는 결구(結構) 방식도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목재를 이용한 건축물은 항상 특정한 방식으로 종결될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된다. 인왕산 숲속쉼터는 이 같은 전형적인 목구조의 원리에서 벗어나 보이도록 했다. 먼저 거대한 지붕판을 단순히 목재 기둥 위에 얹지 않고 끼우는 방식을 택해 마치 지붕이 떠 있는 듯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비어 있는 틈으로 들어오는 간접조명은 이 같은 분리된 효과를 더욱 강조해 보는 이들에게 지붕판이 가벼워 보이게 했다. 조 소장은 “실제로는 기둥 양옆에 보가 있지만 이 위를 판으로 통합한 덕분에 보는 존재감이 없어보이고 지붕판은 떠 있는 것처럼 무게감 없이 보이는 것”이라며 “이를 ‘비결구적 결구’라고 칭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점을 인정받아 인왕산 숲속쉼터는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과 대한민국 건축가협회상,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과거 ‘폐쇄와 통제’를 알리던 이 장소는 이제 ‘개방과 교류’를 상징하는 시설로 탈바꿈해 시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게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등산을 하다 한숨 돌리고 싶은 이들은 물론 넓은 창 너머의 자연을 바라보며 책 한 권을 읽는 여유를 즐기고 싶은 이들까지 인왕산 숲속쉼터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장소다. 조 소장은 “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들르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다”며 “두 개의 등산로를 연결시켜주기도 하는데 사람들의 동선 속에 쉼터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산 4-36에 자리한 인왕산 숲속쉼터는 월요일을 제외한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다만 설 연휴와 추석 연휴에는 휴관한다. 이용요금은 무료다.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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