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伊, 20년간 4차례 개혁 좌초…스페인, 좌파정부가 쉬운 해고 유지 '결단'

[2023 신년기획-尹정부 2년차, 4대개혁 적기다]

1부: 노동개혁 30년, 퇴로 없다

■ 희비 엇갈리는 伊·스페인 노동개혁

伊 '쉬운 해고' 골자 노동개혁 등

강성노조·관료주의에 번번이 실패

스페인, 3월 노동개혁안 의회 통과

청년실업자 14년만에 300만명 하회





유럽의 ‘노동시장 후진국’으로 통하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길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지난 20여 년간 네 차례 이상 굵직한 노동 개혁을 추진해온 이탈리아는 강성 노조와 관료주의, 비효율적 국가 행정 시스템에 막혀 여전히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스페인도 비슷한 시기 추진한 개혁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올해 들어 기존 개혁안을 보완한 정책을 도입하며 고용 지표가 개선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2012년 마리오 몬티, 2014년 마테로 렌치 정부가 잇따라 해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노동 개혁을 추진했다. 몬티 전 총리는 해고 관련 법정 외 해결 절차를 도입해 고용 불확실성을 줄였고 실업수당 수급 대상을 확대하는 대신 지급 기간을 축소,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에 나서게 했다. 렌치 전 총리도 ‘노동개혁법(Jobs Act)’을 도입, 적격성이 결여된 노동자에 대한 해고의 경우 노동법원의 심의를 거치지 않아도 해고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거창한 개혁안은 노동 현장에 도입되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돼도 각 부처의 승인 없이는 현장에서 법령 효과가 발휘되지 못하는데 관료들의 복지부동으로 의회에서 넘어온 법안이 부처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미국보다 2배나 많은 시의회도 중앙정부가 정한 법안을 승인하지 않아 관할 지역 내 법령 발동을 가로막고 있다. 그나마 개혁안은 강성 노조의 벽에 부딪쳐 친노조 방향으로 거듭 수정됐다. 1999년과 2002년에는 ‘쉬운 해고’를 도입하는 개혁을 추진하던 노동부 장관 보좌관이 잇따라 암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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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개혁의 잇단 좌초로 이탈리아 실업률은 10월 현재 7.8%로 유럽연합(EU) 27개국 중 네 번째로 높고 청년 무직자인 니트(NEET)족 비율은 22%로 EU 내에서 가장 높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의 올해 국가 경쟁력 순위에 따르면 노동시장 효율성 순위는 이탈리아가 47위로 칠레(41위), 멕시코(38위), 한국(42위)보다 낮았다.

스페인 역시 이탈리아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2012년 실업률이 25%에 육박하고 청년 실업률이 50%를 넘어서자 정부가 단행한 노동 개혁은 10년 가까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리해고 시 사전 허가제를 사후 보고로 바꾸고 50인 이상 해고 기업에는 해고 대상자에게 최소 6개월의 직업훈련을 제공하도록 하는 등 보완 대책도 마련했지만 성과는 부진했다.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면서 청년층(15~24세)의 임시직 근로자 비중은 2016년 73%까지 치솟았고 1년 이상 직업을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도 계속 늘어났다.

그랬던 스페인의 노동 개혁이 최근 들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욜란다 디아즈 노동부 장관은 기업이 임시직을 제한적인 환경·기간 동안에만 채용할 수 있게 개편해 근로자의 직업 안정성을 높였다. 재계가 반발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급진 좌파 정당 ‘포데모스’ 소속인 디아즈 장관은 2012년 개혁의 ‘쉬운 해고’를 대부분 유지하는 결단을 내려 기업들을 동참시켰다.

노동개혁안이 올 3월 의회에서 통과된 후로 약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의 16세 이상 실업자는 올 2분기 292만 명으로 14년 만에 300만 명을 밑돌았고 올 들어 11월까지 정규직 채용은 650만 건으로 전년 대비 238.4% 폭증했다. 로이터는 “수년간의 직업 불안을 겪은 스페인 청년층이 이제 직업을 갖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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