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KT(030200) 이사회가 차기 대표 후보로 구현모 현 대표를 단독 선정하자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곧장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국민연금은 대표 후보 결정 과정이 불투명했다고 보고있다. 이에 구 대표는 29일 취재진과 만나 “KT 이사회는 경쟁 과정이 충분했다고 본 것 같다”며 “경쟁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대로는 내년 3월 주주총회 표대결까지 차기 KT 대표 자리를 두고 잡음이 오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우려도 이해 된다. 지난해 총 13차례 열린 KT 이사회에서 11명의 사내외 이사는 단 한차례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른바 ‘거수기’ 이사회의 경선이 공정했을지 의문이 따라올 수 있다. 구 대표가 단행한 지분교환도 신경을 긁을만 하다. KT는 올해 신한은행·현대차그룹과 지분을 나눴다. 3분기 말 기준 KT 지분구조는 국민연금 10.74%, 현대차그룹 7.79%, 신한은행 5.58% 등이다. 국민연금의 지위가 약화되고 구 대표 측 우호지분이 늘어난 셈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등을 앞세운 정권의 압박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KT 차기 대표 결정 과정의 주요 순간마다 국민연금·공정위가 나서 ‘초’를 쳤다. 지난 8일,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소유구조 분산 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KT텔레캅을 현장조사했다. 27일에는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KT 등이 투명한 기준에 따라 대표를 선임해야 셀프연임 우려가 해소된다”고 언급했다. 이어 구 대표 최종 선임 소식이 들리자 “대표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쏘아붙였다.
KT는 태생이 공기업인 만큼 국민연금 개입의 당위가 있다. 하지만 KT는 상장사다. 개입 권리는 지분에서 나와야 한다. 흥미로운 지점이 여기에 있다. 올 초 12.68%이던 국민연금의 KT 지분율은 3분기 말 기준 10.74%로 줄었다. 권리 행사에는 적극적이지만 KT 주가가 오르자 수익 실현을 위해 지분을 판 것이다. 구 대표 취임 당일 1만9700원에 불과했던 KT 주가는 이날 기준 3만3800원에 마감했다. 디지털플랫폼 전환이 기반이 된 경영성과 덕이다. 구 대표는 2019년 주당 1100원이던 배당도 지난해 1910원으로 늘렸다. 구 대표가 국민연금에 큰 수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 국민연금의 최우선 목적은 재원 확보다.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구 대표보다 뛰어난 경영성과를 낼 만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대안 없는 비토로는 정권 교체에 따른 ‘전리품 챙기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