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금강 대홍수 때는 빨래를 빨고 진료를 도왔다. 2003년 태풍 매미가 남부 지방을 할퀴고 갔을 때는 피해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6년과 2011년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나자 밥차를 몰고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전 국토를 휩쓸었을 때는 마스크와 방호복을 가지고 찾아왔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으로부터 이뤄졌다. 주인공은 충남 논산적십자봉사관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윤종순(65) 씨.
최근 행정안전부로부터 자원봉사 분야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윤 씨는 충남 최고의 ‘봉사왕’이다.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그곳이 어디든 반드시 나타났다. 태풍 매미·볼라벤은 물론 충남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나타나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흙을 퍼 날랐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곳을 찾아다닌 시간이 44년간 무려 2만 5000시간에 달한다. 충남에서 이 같은 기록을 보유한 사람은 그를 제외하고 단 한 명뿐이다. 논산적십자봉사단 사무실에서 만난 윤 씨의 “우리는 자원봉사에 중독된 사람들”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봉사 활동의 대상이 재난 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의 손길은 독거노인, 다문화 가정, 조손 가정 등에도 이어진다. 지난해만 해도 자체 운영하는 빵굼터에서 빵과 케이크를 만들어 100가구의 조손 가정에 전달했고 가을에는 김장을 해 취약 계층 300가구에 돌렸다. 지난해 5월에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관광을 떠났고 이주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고추장·된장과 같은 전통 장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호관찰소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심리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을 하려면 당연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는 “자원봉사를 위해 따놓은 자격증만 상담심리사·응급처치강사·푸드테라피·미술치료 등 20개 이상에 달한다”며 “자격증이 워낙 많아 이력서를 낼 때 꼭 필요한 것만 기재하고 나머지는 적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원봉사에 대한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봉사는 본질적으로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게 그것이다. 자기만족을 위해 골프를 치고 여행을 가듯이 자신들도 자원봉사를 통해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고 만족감을 찾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철학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습관이 있습니다. 행복을 말하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것도 습관이죠. 내가 행복하고 사랑하며 기쁘다고 생각하면 내 생활이 변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봉사에 대한 신념은 가족을 모두 자원봉사자로 만들어 놓았다. 실제로 남편은 1만 시간의 봉사 활동을 했고 딸 역시 1000시간을 넘어섰다. 아직 나이가 어려 어려운 일은 하지 못하지만 외손녀와 친손자·손녀도 자원봉사에 동참하고 있다. 3대에 걸친 자원봉사자 가족이 등장한 것이다.
안타까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가장 속상한 것은 돈을 받고 봉사 활동에 나섰을 것이라고 보는 오해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노리고 자원봉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윤 씨는 “봉사 활동을 나갔을 때 어떤 사람들이 일당은 얼마나 받느냐, 연봉 3000만 원은 되느냐고 묻고 어떤 사람은 지방선거에 나설 생각이 있느냐는 얘기까지 하더라”며 “이럴 때면 우리의 순수한 마음이 폄훼당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거나 의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해 남기고 싶은 말도 있다. 그는 “자원봉사는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 마라톤처럼 달리는 것”이라며 “잠깐 하는 자원봉사는 내 욕망만 채우는 것일 뿐 끝을 볼 수 없다”고 조언했다.
윤 씨는 자신이 44년간 자원봉사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데는 가족의 도움이 컸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자신을 묵묵히 지켜봐주며 끝까지 응원했고 아들딸도 스스로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으며 엄마를 지지한 것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남편과 아들딸이 ‘사랑해’ ‘존경해’라는 말을 전하며 옆에서 지켜봐준 게 지금까지 내가 봉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며 “부끄럽지 않게 사는 모습을 보인 것 같아 기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