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도권에서 전월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법원에 구제를 요청한 횟수가 1만 건을 넘어섰다. ‘빌라왕’ 김 모 씨 등으로 인한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전세 가격이 하락하고 임대 수요가 줄어드는 등 집주인이 기존 보증금을 반환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어 피해 사례는 당분간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2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이 수도권에서 발부한 ‘임차권등기명령’ 건수는 1만 493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1년의 6690건에 비해서도 1년 만에 3803건(56.8%) 급증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대차계약이 종료됐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법원에 신청해 받는 것으로 이를 통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등의 임차 권리를 유지하게 된다. 임차권 등기 없이 거주지를 옮기면 주요 임차 권리를 잃게 돼 보증금 사고가 난 임대주택의 세입자는 임차권등기명령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서울 지역만 따로 보더라도 2021년 2993건이던 임차권등기명령 건수는 2022년 4227건으로 41.2% 증가했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피해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지난해 7월 288건이었던 임차권 등기가 12월에는 701건이 됐다. 같은 기간 인천과 경기의 증가율은 각각 111.1%와 45.1%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 수도권 임차권등기명령 건수는 201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은 수준이지만 상당 부분 과소 집계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선 주택 1139채를 임대하다 지난해 10월 돌연 사망한 빌라왕 김 씨의 경우 서울 강서구, 인천 미추홀구 등에 주로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와 계약을 맺은 세입자들은 임차권 등기를 할 수 있는 대상이 법적으로 소멸된 상태라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지 못한다. 인천 미추홀구 등지에서 빌라와 오피스텔 수십 채를 임대하다 사망한 송 모 씨의 임차인들도 마찬가지 경우다. 여기에 정보 부족 등 다른 이유로 임차권 등기를 하지 않은 인원을 포함하면 보증금 피해 건수는 1만 건을 훌쩍 웃돌 것으로 보인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지난해 서울 강서구(1027건), 인천 미추홀구(752건), 경기 부천시(740건), 인천 서구(712건), 인천 부평구(594건), 인천 남동구(447건) 순으로 많이 등기됐다. 이들 지역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다주택채무자(악성 임대인)의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들이다. 1만 건에 달하는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상당 부분 고의적인 전세사기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시세 파악이 어려운 빌라 밀집 지역에서 부동산 시장 과열기 때 높은 가격에 전세계약을 맺은 경우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며 “전세 시장 침체로 집주인이 기존 보증금을 반환하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지고 있어 피해 사례는 한동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