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번창과 풍요의 상징인 토끼와 같이 올 한해 우리 경제에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들의 일갈은 경제계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원자재 수급 불안,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통화 긴축, 재정 긴축이 계속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한국 경제성장 전망도 어둡다. OECD 1.8%, 한국은행 1.7%, 한국개발연구원(KDI) 1.8% 등이 모두 1%대 전망을 내놓았다. 소비 부진, 수출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주력 산업들 대부분이 부진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제는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라는 경제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끊이지 않는 위기를 뜻한다. 영국 영어 사전 콜린스는 이 단어를 2022년을 관통하는 상징으로 주저 없이 꼽았다.
그러면 우리가 글로벌 위기 상황을 넘어 새로운 기회까지 엿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민간의 투자다. 성장을 구성하는 단위 중 투자는 소비나 수출에 비해 가변적이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감각에 의해 결정되다 보니 어려운 시기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민간투자는 단기적으로 고용과 소비를 촉진해 경제 순환을 돕고 장기적으로는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 미래에 우리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해준다. 경제의 견인차 중 1번으로 꼽는 이유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나 존 힉스도 투자가 경기를 움직이는 중요한 변수라고 얘기했다.
정작 국내 민간투자는 활력이 줄어드는 모양새다. 미국 등 주요국 대다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투자 비중이 2000년대보다 2010년대에 더 늘어났다. 반면 한국은 3.4%에서 2.9%로 0.5%포인트 줄었다.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규제 혁신이다. 투자 강국 미국의 법과 제도는 정해진 것 이외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포지티브’ 시스템이지만 우리는 정해진 것 빼고는 할 수 없는 ‘네거티브’ 체계다. 민간 기업의 활동 반경이 작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0년 OECD의 상품시장규제(PMR)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종합 순위는 38개국 중 33위에 머물렀다.
두 번째 투자 활성화 전략은 기득권 타파다. 최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이 결합되면서 청년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 모델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AI 안경 쇼핑 스타트업은 안경사 단체, 부동산 디지털 거래 플랫폼은 공인중개사 단체, 법률 플랫폼은 변호사 단체, 뷰티 플랫폼 및 화상 투약 시스템은 의사·약사 단체와의 기득권 갈등을 풀지 못해 ‘일부 휴업’ 상태다. 이해 갈등에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 실질적인 사회 논의 채널을 마련해 젊은 세대들에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이른바 ‘죽음의 계곡’에 빠질 확률이 71%에 이른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도 존재한다.
외환위기·금융위기는 출발점이 자본시장이었다. 반면 올해 닥쳐올 위기는 석유 파동 이후 40년 만의 실물경제 위기다. 고난 때마다 우리 경제에는 수출이 돌파구였지만 높은 원자재 가격과 글로벌 시장 위축 등으로 이번에는 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투자의 역할도 그만큼 커졌다. 1966년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등 국가 산업 인프라 건설에 전면적으로 나섰을 당시 우리 투자는 전년 대비 57.7%나 증가했다. 최근 TV 드라마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기업인 1세대들의 정신이 정점에 오를 때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5G 고속도로, 빅데이터 제련소 등으로 투자보국(投資報國)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