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인 유학원을 통해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 베트남 학생은 2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지난달 20일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만난 전티톼 국제대진유학원 대표가 전한 한국 유학 시스템의 실상이다. 현지 유학생의 80%가 공식 루트인 유학원이 아닌 불법 브로커를 통해 한국 유학길에 오른다는 얘기다. 브로커에게 건넨 목돈은 이들이 정상적인 유학 생활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 불법체류의 길로 이끈다. 한국에서 공부하기보다는 돈을 벌어야 브로커에게 지불한 돈을 갚고 정착 비용을 마련하는 일이 가능해서다. 전문가들은 브로커가 공고히 자리 잡은 현재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유학생들의 불법체류 전환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한국 유학 브로커가 활개를 치는 것은 현지에 정식 허가를 받은 유학원이 드물 뿐만 아니라 유학 비자 발급에 필요한 각종 서류 준비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서류 작업을 맡기면 단시간에 유학 준비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 모 씨는 “한국 사람들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만 들어가도 서류 준비나 비자 발급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으로 가고 싶은데 정보가 없으니 합법인지 불법인지도 모른 채 지인 소개에 의존해 브로커를 소개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임정호 전 중국 선전대 교수도 “베트남 학생이 한국 대학에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제출하려면 베트남어로 된 서류를 한국어로 번역한 뒤 주베트남 한국 영사관에서 ‘공증’을 받아야 한다”며 “도장 한 개를 받기 위해 학생들이 새벽 4시부터 영사관 앞에서 길게 줄을 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렵게 영사관에 서류를 제출한 뒤에도 3개월쯤 지나야 결과가 나온다”며 “반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맡기면 단 몇 주 만에 (모든 과정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유학 준비에 필요한 비용은 약 7000~9000달러(약 890만~1150만 원) 정도지만 브로커가 중간에 끼면 금액이 2배 가까이 치솟는다. 1만 2000~1만 5000달러(약 1500만~2000만 원)에 달한다. 서류가 많을수록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박창덕 (사)한국이민사회전문가협회(KIPA) 해외협력본부장은 “브로커들이 받는 돈이 서류 하나에 1000달러(약 130만 원)라고 보면 된다”면서 “비용을 줄이려면 직접 영사관 등을 찾아가면 되지만 서류 준비 과정이 복잡하고 영사관 등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브로커를 통해 확실히 비자를 받으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대학들도 브로커를 통해 입국한 유학생들의 이탈률이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브로커들은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대학 면접을 할 때 거짓말을 하도록 종용한다. 유학 준비 비용을 묻는 질문에 ‘실제 돈이 얼마나 들었든 8000달러로 대답하라’거나 ‘유학 준비를 어디서 했냐’는 물음에 ‘정부에서 허가받은 유학원이라고 대답하라’는 식이다.
브로커를 통해 입국한 베트남 학생들의 상당수는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고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다.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브로커들은 학교 생활 적응 지원 등의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받아가는데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한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쿠엇광중(23) 씨의 친구 역시 한국 유학 중 불법체류자가 됐다. 그는 “친구가 학교에서 적응을 못해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브로커를 통해 준비 없이 오면) 생활이 힘드니까 한국에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처음부터 한국 입국 목적을 유학 등 학업이 아닌 ‘돈’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어학원을 운영하는 A 씨는 “유학생 중 불법체류자 전환 비율이 급증하는 것은 브로커의 영향을 받아 아예 돈을 목적으로 유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공부를 하러 간 학생들도 임금이 훨씬 높은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불법 취업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정부의 허가를 받은 정식 유학원을 통해 들어온 학생들의 상황은 180도 다르다. 유학원은 학원 학생을 뽑는 과정부터 엄격하다. 고등학교 성적과 졸업 시기, 거주 지역 등을 고려해 한국에서 인력 시장으로 이탈하지 않고 공부만 할 학생을 선발한다. 선발 이후에는 약 6개월간 한국어를 가르친다. 유학생들의 한국 생활 적응을 돕고 이탈률을 낮추기 위해 꼭 필요한 노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유학원들은 베트남 전체에서 20%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아무런 준비 없이 학생을 보낸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유학생 선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석용 한국이민사회전문가협회 하노이 지사장은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유학생을 더 많이 받아 교육시키고 한국에 정착시켜 산업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지금은 선발 기준이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서류 업무 등 행정 처리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에 가짜 서류를 만들기 위해 브로커를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홍선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장도 “불법체류를 우려해 비자 발급 조건을 까다롭게 제한하기만 할 게 아니라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 며 “현지 유학원들이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 등급을 평가할 수 있는 고과 시스템을 도입하고 결과를 한국 대학에 전달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