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행동주의(Activism) 펀드를 표방한 자산운용사들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행동주의란 주주가 특정 기업의 지분을 확보해 의결권을 가진 후 자산매각, 배당확대, 구조조정 등 기업의 지배구조 및 투명 경영와 관련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주주 행동을 말합니다. '행동주의 펀드'는 이런 적극적 의사 결정을 제시하는 펀드 운용사를 일컫는 말입니다. 행동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기업의 거버넌스 구조를 개선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주주의 이익을 늘리는 것인데요.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참견한 후 차익만 추구하고 행동주의 펀드 사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ESG 경영이 중요해지고 개인 투자자들의 증시 참여가 가파르게 늘며 주주 권익 보호라는 가치가 다시 조명을 받는 모습입니다. 또 행동주의 펀드가 일부 상장사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면서 오히려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해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약과 국내 증시에 불러일으킬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폭 넓히는 행동주의펀드…기업 변화 이끌어낸 얼라인·트러스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트러스톤자산운용·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안다자산운용 등 행동주의를 표방한 펀드운용사들은 최근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 가치 제고를 내걸고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연예기획사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을 상대로 성과를 이뤄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있습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에스엠 지분 1%가량을 매수한 다음 에스엠이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과 불공정한 용역계약을 맺고 있다고 문제 삼았습니다. 지난해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공개서한 발송 후 결국 에스엠은 지난해 10월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 조기종료를 공시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흥국생명에 대한 태광산업의 4000억 원 유상증자 지원을 무산시키면서 주주 가치를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흥국생명은 앞서 4000억 원 규모의 상황전환우선주 형태의 유상증자 계획을 내놨는데, 태광산업이 이 유상증자에 참여하겠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흥국생명의 지분은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과 그의 조카, 친인척 등 오너 일가가 9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태광산업은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태광산업의 대주주라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흥국생명 주식이 전혀 없는 태광산업이 오너 일가의 회사인 흥국생명을 돕겠다고 나선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태광산업의 2대 주주(지분 5.8%)인 트러스톤자산운용에 의해 좌초됩니다. 지난달 9일 “흥국생명 주주가 해결할 문제를 태광산업 주주에게 떠넘기고 있으며, 대주주를 위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희생하는 결정"이라는 내용의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법적 공방을 불사 하겠다는 강력한 이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지난달 14일 태광산업은 유상증자 불참을 결정했습니다.
올해 예고된 행동주의 펀드 이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적인 행보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최근 BYC를 상대로 '무력시위'를 펼치고 있습니다. BYC는 속옷 회사로 유명하지만 사실 2조 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보유한 알짜 회사로 늘 보유자산 대비 저평가됐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보유 부동산을 공모 리츠화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주제안을 지난 12월20일 경영진에게 전달한 상태입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대형 금융사들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 등 총 7개 금융지주에 순이익 중 50%를 배당 등으로 주주에게 환원해달라는 내용의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했습니다. 다음달 9일까지 이사회 결의 통한 답변 공시 요구했으며, 금융지주들이 요구 사안들에 화답하지 않으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공식적으로 진행하고 관련 주주 캠페인을 이어갈 것을 예고했습니다. 에스엠과의 '2라운드'도 예상됩니다. 지난해 이 회장 측이 한발 물러서면서도 게임 업체인 컴투스를 백기사로 끌어들였는데요, 얼라인 측은 3월 주총에서 대주주 견제를 강화할 주주 제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외에도 라이프자산운용는 SK에 자사주 소각과 리스크관리위원회 신설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습니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원조격인 강성부펀드(KCGI)는 올해 오스템임플란트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가치제고 및 내부 혁신 등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주주제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강성부펀드는 최근 오스템임플란트의 지분 200억 원어치를 추가로 사들이면서 2대 주주 턱밑까지 쫓아온 상황입니다. 기업의 지분을 1% 미만으로 보유하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들도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와 안자자산운용은 KT&G를 상대로 한국인삼공사를 인적분할해 상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먹튀’ 이미지 벗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주체될까?
사실 국내에서는 지난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의무)가 도입된 이래 투자자 권익 보호와 자산 증대를 위해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나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여럿 탄생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이 펀드의 주주 서한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등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들의 활동 역시 주춤해졌었습니다. 소수지분으로 여론몰이를 하면서 경영에 지나친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주주들을 모아 강한 목소리를 내고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챙겨 떠나는 '머튀' 이미지도 강했는데요. 최근 주주행동이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사례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재조명 받는 모습입니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가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데에는 '공정'과 소액주주의 권리에 주목하는 환경에 있다"며 "특히 지난해 트러스트자산운용과 얼라인 자산운용 등 일부 행동주의 펀드들이 만든 실질적인 변화가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의 캠페인 증가가 투자 대상 기업의 주가 상승과 한국 증시 재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옵니다. 김 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의 캠페인은 일반적으로 주주가치 제고 기대감으로 연결되면서 주가에 긍저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또 기업들의 주주환원 정책 중요성을 환기하면서 그동안 한국증시의 저평가 요인으로 꼽혔던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성과를 계기로 기업들이 앞장서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고 나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을 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