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총재를 포함한 한국은행 고위급 인사들이 경제 상황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경계하고 나섰다. 경제 상황이 어렵더라도 지레 위축될 경우 오히려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며 불안에 떨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한은이 위축되지 말자는 메시지를 연일 낼 만큼 연초부터 경제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것으로 보인다.
10일 한은에 따르면 이종렬 부총재보는 지난 9일 블로그를 통해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위기 발생 가능성을 상시 경계하되 지나친 우려로 지레 위축되어 위기를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 총재가 취임한 이후 신설된 블로그에 부총재보급 인사가 글을 남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총재보는 금융안정보고서를 작성한 금융안정국 등을 총괄하고 있다.
올해 경제전망은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주요국 긴축 기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감염병, 글로벌 경기 둔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단기금융시장 불안에 가계부채와 부동산금융 부실 문제까지 마주하고 있다. 실물경제 위축에 정부마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낮췄다. 정부가 1960년대부터 매년 연말마다 발표한 이듬해 전망치 가운데 가장 낮다. 한은도 1.7%로 예상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부총재보는 “닥쳐올 위험요인에 적극 대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위험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거나 위험 대응능력을 현실과 다르게 과소평가해 오히려 위험을 증폭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우리 금융시스템은 어느 때보다 양호한 복원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현재의 위험도 올바른 정책 대응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부총재보는 우리 경제를 건강 검진에 비유했다. 그는 “지방간이나 위염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중병에 걸릴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방안에 누워있기보다는 식습관을 고치고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대처법”이라며 “우리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나 잠재 리스크를 알리는 것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라는 취지이므로 이에 과도하게 위축되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발언은 이 총재가 지난 3일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한 신년사와 같은 맥락이다. 이 총재는 “우리가 경제 상황에 대한 지나친 우려로 지레 위축될 경우 오히려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총재는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지나고 있지만 희망적인 부분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외건전성 개선으로 외환 불안이 완화됐고, 중국 코로나 상황이 바뀌면 무역수지도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심리 위축을 경계하는 만큼 이례적으로 부동산 경착륙도 우려하고 있다. 이 총재는 같은 자리에서 “부동산 관련 금융이 형태를 달리하면서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는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정책당국과 금융인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도 “국내에서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관련 금융시장의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 부총재보는 최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방안 관련해서 “부동산 경기가 연착륙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협조도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