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가을동화' 송혜교 앓았던 백혈병…이젠 해피엔딩도 가능하다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식약처, 만성골수성백혈병 성인 환자에 '보술리프' 사용 허가

1세대 표적항암제 '글리벡' 이후 후속 약물 등장…치료성적 향상

내성 극복 시도 지속…국내 허가·보험적용 등 접근성은 아쉬워

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배우 송혜교는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았다. 드라마 캡처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배우 송혜교는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았다. 드라마 캡처




'백혈병'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드라마 <가을동화>를 떠올리셨다면 저와 동세대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글로리'를 통해 복수극에 첫 도전한 배우 송혜교는 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백혈병에 걸려 사랑하는 남자의 등에 업힌 채 죽음을 맞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세기의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도 끝내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었죠. 오랜 세월 불치병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쳤던 백혈병은 20여 년새 크게 달라졌습니다. 흔히 '골수이식'으로 불리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비롯해 다양한 기전의 신약이 개발된 덕분에 약물로 '관리'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죠. 백혈병 유형과 환자의 연령, 전반적인 건강상태에 따라 선택 가능한 치료옵션이 달라지는 데다 예후도 천차만별이지만 일부 환자에선 완치 희망을 가질 정도로 치료성적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노바티스가 개발한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 제품 사진. 사진 제공=약학정보원노바티스가 개발한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 제품 사진. 사진 제공=약학정보원




가장 대표적인 유형으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Chronic Myeloid Leukemia)을 꼽을 수 있을텐데요, CML은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지닌 조혈모세포(혈액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세포)가 골수에서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백혈병 유형입니다. 만성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유형보다 진행이 느린 편이지만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지 못한 환자들은 대부분 사망했죠.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는 CML 발병의 핵심인 필라델피아 염색체에 주목하고, 티로신키나아제의 활성을 선택적으로 언제하는 기전의 약물을 개발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불필요한 암 발생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신호전달 자체를 차단하는 원리인데요, 이 약이 바로 2001년 5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입니다. 글리벡은 암세포와 정상세포의 구분없이 무차별하게 공격하던 기존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비교적 적고 효과도 뛰어나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줬죠. 글리벡 등장 이후 CML 환자의 10년 생존율이 약 85%로 증가했다고 하니 당시 기적의 약이란 별명이 붙은 연유를 알 법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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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글리벡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CML 환자 10명 중 3명 꼴로 글리벡이 듣지 않는다는 건데요, 약 10%는 처음부터 투여반응이 없고, 20% 정도는 치료가 잘 듣다가 어느 순간 유전자 변이로 인해 내성이 생겨 백혈병이 재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표적항암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시장에서는 글리벡 이후 티로신키나제를 저해하는 기전의 약물들이 속속 등장하다 보니 편의상 세대를 나눠 부르기도 합니다. 글리벡이 1세대라면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타시그나(성분명 닐로티닙),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와 같이 글리벡에 내성이 생겼거나 글리벡을 견디지 못하는 CML 환자들에게서 보다 나은 효과를 보이는 약물을 2세대라고 부르죠. '아이클루시그(성분명 포나티닙)'의 경우 T315I라는 돌연변이 때문에 기존 약물이 듣지 않는 환자에게도 효과적이라고 해서 3세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판매 중인 '보술리프' 제품 사진. 사진 제공=화이자해외에서 판매 중인 '보술리프' 제품 사진. 사진 제공=화이자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은 고형암에 비해 신약개발가 다소 더딘 편인데요, CML은 그나마 후속 신약들의 성과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차세대 약물들이 들어오면서 환자들의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3세대 CML 치료제 '보술리프(성분명 보수티닙)'가 바로 어제(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고요, 노바티스가 개발해 작년 6월에 허가를 받은 '셈블릭스(성분명 애시미닙)'는 기존 1~3세대 약물과 타깃이 달라 무려 4세대 약물로 불리죠. 보술리프는 2012년 FDA로부터 신속허가를 받은지 무려 10여 년만에 국내 허가를 받으며 투여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CML로 새롭게 진단받았거나 기존 약물에 내성이 생긴 CML 성인 환자가 투여 대상인데요, 다만 건강보험에 등재되어 실제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셈블릭스는 식약처 허가 후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고 있죠. 획기적인 신약의 등장으로 환자들의 예후가 크게 개선된 백혈병, 치료 접근성도 하루빨리 향상되길 기대해 봅니다.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코너는 삶이 더 건강하고 즐거워지는 의약품 정보를 들려드립니다. 새로운 성분의 신약부터 신약과 동등한 효능·효과 및 안전성을 입증한 제네릭의약품(복제약)에 이르기까지 매년 수없이 많은 의약품이 등장합니다. 과자 하나를 살 때도 성분을 따지게 되는 요즘, 내가 먹는 약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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