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업인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에서 혁신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도 국내에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시급히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본지가 11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홍릉강소특구사업단과 함께 11일 서울 홍릉 서울바이오허브에서 연 ‘2023 홍릉 첨단바이오 포럼’에서 김병곤 엔도로보틱스 대표는 “혁신 의료 기기 가격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기존 의료 기기의 최대 90%밖에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수술 이후 흉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입이나 항문으로 진입해 수술하는 혁신 로봇을 개발 중인데 현재 식품의약국(FDA) 등 미국 시장 문을 먼저 두드리고 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있는데 허가를 받고도 가격이 안 정해졌다고 사용을 못하게 한다. 병원에서 혁신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구조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미국·대만·일본·유럽 등에서는 허가를 받으면 개발사 책임하에 환자가 선택해 쓰도록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평가 이후 가격 산정시에도 한국은 제조 원가와 유통 마진만 고려해주는 데 비해 해외에서는 연구개발(R&D)과 임상에 투자된 비용까지도 감안해 신청 가격에 팔도록 한다”고 했다. 신의료기술의 핵심은 임상 데이터인데 임상을 못하게 하면서 데이터를 요구해 먼저 FDA에서 허가를 받으려 하고 내수용으로는 기능과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품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산업진흥원장 출신인 정기택 홍릉강소특구 GRaND-K 창업학교 교장은 “신의료기술 가격 결정 구조가 식품의약품안전처·국민건강보험공단·보건의료연구원 등의 복잡한 규제와 과거 관행으로 혁신이 잘 안 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 이전 3개 정부를 보면 바이오 헬스케어가 대표 산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현 정부에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정 교장은 이어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각 성별 규제자유구역에서 혁신 의료 기기를 많이 내놓고 있는데 지난 10여 년간 한국을 앞질렀다”며 “민드레이드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정도로 중국의 바이오 헬스케어 생태계가 확장됐다”고 소개했다.
건강 관리 정보 앱(리터러시M)을 운영하는 이상호 케이바이오헬스케어 대표(경희대 의대 교수)는 “의료 기기 허가 규제 요건이 세고 병원에서도 건강보험 수가에 맞추다 보니 혁신 기기가 있어도 쓰기가 힘든 실정”이라며 “강원도 원주처럼 비대면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가 풀린 샌드박스도 있지만 국가적으로 혁신 기술이 통할 수 있는 병원 생태계를 만들고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사 출신으로 나노소포체 희귀 난치성 치료제를 개발 중인 시프트바이오의 남기훈 부대표는 “신약 개발 분야는 식약처를 설득하기가 어려워 바로 FDA로 가려고 한다”며 “미국은 혁신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데 비해 국내에서는 혁신의 한계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FDA는 한 프로그램 담당자가 정해지면 임상 진행 과정에서 바뀌지 않는데 한국은 수개월마다 바뀐다”며 “식약처의 전문 인력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고 요청했다.
고대기술지주 자회사인 아라레연구소의 이학재 대표(고대 의대 연구교수)는 “국내에서는 바이오 규제도 많고 시장도 크지 않아 해외 진출을 먼저 고려하고 있다”며 “하지만 해외 진출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나 투자가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방사선 중 감마선을 영상화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를 개발해 암 수술 시 최소 절제만으로 수술이 가능하게 도움을 주는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어 “홍릉특구의 강점은 KIST·고대·경희대·시립대 등이 있어 좋은 인력과 기술이 많은 것으로, 잘 융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하지만 기술 사업화가 잘되지 않고 있다. 기술을 이전 받으려고 해도 가격도 비싸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우리가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우수한 진단키트, 마스크, 감염자 관리 체계 등의 저력을 보여준 것처럼 바이오 헬스케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정 교장은 “우리 건강보험 체계가 아주 잘돼 있어 빅데이터가 많고 좋은 의사와 병원도 많아 정부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신의료기술과 신약,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키우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빠른 인허가 절차 등 규제 혁파, 혁신을 장려할 수 있는 보험 수가 산정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우리는 일본과 비교해도 디지털화가 매우 잘돼 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빅데이터를 갖고 있어 혁신 스타트업에 조금만 투자해주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최치호 홍릉강소특구 사업단장은 “FDA는 혁신 의료 기기 심사 평가에서 회사가 유효성·안정성만 입증하면 개별 인증하지 않고 회사의 모든 기기를 사전에 쓸 수 있게 패러다임 전환을 꾀했다”며 “우리도 규제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규제가 혁신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단장은 이어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경우 수입의 10%가량을 기술 사업화로 충당한다”며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병원·대학·연구소에서 전문 기술 사업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진 KIST 원장은 “바이오 벤처스타트업의 애로 사항을 총리 주재 제도개선혁신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하겠다”며 “FDA에 허가를 신청하면 허가를 내주려는 차원에서 ‘이런 점을 보강하라’고 연락이 오는데 우리 식약처 등도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윤 원장은 이어 “KIST가 미국 보스턴에 갖고 있는 랩을 올해 협력센터로 격상해 키울 것”이라며 “바이오벤처사들이 국내 시장만으로는 안 되니 활발하게 글로벌 진출을 할 수 있는 교두보로 쓰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