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생소한 중앙아시아 국가 아프가니스탄에서 2007년 벌어졌던 탈레반의 한국인 23명 납치 사건은 많은 국내 대중에 큰 충격으로 남아 있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교섭’은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임순례 감독은 첫 대작 상업영화 도전에서 사건 자체보다 인질들을 구하려는 이들의 사투에 초점을 맞추면서 장기인 휴머니즘을 선보인다.
작품의 뼈대는 피랍 사건이 벌어진 후 아프간에 급파된 교섭 전문 외교관 정재호(황정민), 국정원의 중앙아시아·중동 전문 요원 박대식(현빈) 등의 인질 구출을 위한 분투기다. 테러집단과 교섭은 없다는 원칙에 충실한 재호와 사람을 살리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국정원 또라이’ 대식은 사사건건 대립하며 여러 사건들과 맞닥뜨리지만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점점 마음을 맞추게 된다.
16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임 감독은 “민감한 소재를 제안 받고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며 “주제 면에서 뭔가 크게 생각해볼 수 있어 끌림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목숨도 위험한데,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무한책임을 어디까지 수행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황우석 사건을 다룬 ‘제보자’, 1년 내내 촬영했던 ‘리틀 포레스트’ 등 어려운 도전만 하는 것 같다는 질문에는 “민감한 소재를 잘 피해가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교섭’은 임 감독의 연출작 중 가장 많은 168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으로, 폭탄 테러와 추격전 액션과 같은 상업영화의 볼거리도 있다. 현빈이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추격전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영화 속 액션 장면에서 죽는 이는 단 한 명. 그는 “일단 사람을 많이 죽이지 말자, 총을 쏘거나 사람을 죽일 때 이유가 있는 액션을 해보자고 생각했다”며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22년만에 황정민과 이 작품에서 다시 조우했다. 황정민은 임 감독에 대해 “영화 커리어를 열어주신 분”이라며 캐스팅 제안에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수락했다고 말한 바 있다. 황정민은 재호를 연기하며 가장 중요한 장면인 탈레반과 교섭을 오롯이 연기력으로 채운다. 임 감독은 “기존 역할이나 장르와 굉장히 다른데 흔쾌하게 출연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하우가 많아서 도움을 크게 받았다”고 감사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