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우크라이나 지원군 ‘비버’





16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비버 가죽으로 만든 모자가 유행했다. 귀족들이 우아한 동작으로 비버 모자를 벗으며 인사하는 것이 에티켓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유럽 국가들은 비버 모피를 확보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고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해 비버 사냥에 나섰다. 비버는 사냥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가 20세기 후반부터 개체 수가 늘고 있다.



설치류인 비버는 돌출형 앞니와 가지런히 모은 앞발의 앙증맞은 외모로 동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튼튼한 앞니로 나무 등을 갉아 댐을 만들고 그 중앙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이로 인해 생긴 습지는 생물들의 서식처가 된다. 비버가 수천 그루의 나무를 사용해 캐나다 우드버펄로국립공원에 855m 길이의 댐을 만들었던 일화도 있다. 비버댐이 오염 물질을 걸러낸 덕에 미국 콜로라도 이스트 강의 수질을 개선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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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버가 러시아의 침략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 북서부에 비버가 지은 댐들이 크게 늘었는데, 덕분에 이 일대를 침공 경로로 검토했던 러시아군이 난처해졌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버가 댐을 만들면 사람들이 허물어버리지만 이번에는 전쟁 때문에 댐을 방치해둔 덕에 외려 강력한 저지선을 확보하게 됐다. 여기에다 이례적으로 온화한 겨울 날씨로 유럽 각국의 난방 수요가 크게 줄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에너지 무기화를 통한 서방 분열’ 전략도 힘을 못 쓰게 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초기만 해도 세계적인 군사 강국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가 점쳐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들의 결사 항전 의지와 서방의 강력한 지원으로 우크라이나가 영토와 주권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싸울 의지와 실전 훈련, 막강한 군사력, 튼튼한 동맹 등을 통해 스스로 지킬 힘을 갖춰야 하늘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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