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업과 사모펀드(PEF)가 기업 경영권 인수와 지분 투자에 나서면서 올해 자금 납입에 따라 완료를 앞둔 거래가 26조 원 규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조(兆)원 단위 거래는 9조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급격한 금리 인상과 시장 유동성 고갈에 거래 지연이나 결렬, 자금 조달 후폭풍 우려가 여전해 시장이 활기를 되찾을지 주목된다.
25일 서울경제 시그널이 집계한 리그 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매매계약(SPA) 발표 이후 올해 잔금 납입을 앞둔 거래 규모가 25조 9521억 원에 달했다. 집계 기준은 50억 원 이상 규모의 경영권 인수와 지분 투자다.
잔금 납입에 따라 올해 거래 종료가 예상되는 경영권 인수 및 소수 지분 투자 거래는 모두 133건이다. 이 가운데 1조 원 이상의 거래는 총 4건으로 전체 완료 예정 거래의 3% 수준이다.
에스디(SD)바이오센서는 이날 메리디언바이오사이언스 인수 금액(15억 3000만 달러, 약 1조 9931억 원) 가운데 10억 3000만 달러를 이달 31일 전액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원래는 사모펀드 운용사 SJL파트너스가 공동 인수사로 나서면서 지난해 5억 달러(약 6380억 원) 규모의 인수 금융을 완료했고 글로벌 출자기관 등을 대상으로 4억 1000만 달러 규모의 지분 투자 자금을 모집해왔다. 다만 각국 출자자와의 조건 협상이 길어지자 SD바이오센서는 인수 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 투자 전액을 일단 책임진 뒤 SJL파트너스가 추후 투자하는 방식으로 인수 구조를 변경했다.
올해 첫 조 원 단위 인수합병(M&A) 거래는 네이버의 북미 최대 중고 패션 플랫폼 포시마크 인수(1조 6700억 원)다. 지난해 10월 네이버는 인수 금액 2조 3000억 원 규모에 경영권 인수를 발표한 뒤 3개월 만인 이달 6일 잔금 납입으로 거래를 완료했다. 네이버는 미국에서 포시마크 주식담보대출로 인수 금융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이 내리면서 원화 환산에 따라 인수 금액은 소폭 줄었으나 국내외를 불문하고 전체적인 인수 금융 금리가 오르면서 과거보다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계약을 발표한 경영권 M&A 중 최대 규모를 기록한 롯데케미칼(011170)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도 조만간 완료가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0월 2조 7000억 원에 일진머티리얼즈 허재명 이사회 의장이 보유한 지분 53.3%를 인수하는 SPA를 체결했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위해 1조 원 이상을 유상증자를 통한 자체 조달로 마련하고 나머지 1조 7000억 원은 인수 금융으로 조달하는 인수 구조를 짰다. 이에 따라 이달 19~20일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1조 2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청약을 진행했고 이 중 6050억 원을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금액에 보탠다.
한화(000880)그룹은 올해 상반기 중 대우조선해양(042660) 인수를 마무리한다. 지난해 12월 한화는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지분 49.3%를 2조 원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와 한화시스템(272210) 등 계열사가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금을 마련한다.
올해 26조 원의 거래가 종료를 앞뒀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급격한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거래가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베어링PEA의 PI첨단소재 인수(1조 2750억 원)와 웰투시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의 넥스플렉스(6000억 원) 매각 등이 무산된 바 있다.
이에 올해 거래 종료 규모가 일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거래는 잔금 납입이 지연될 가능성도 높다”며 “특히 조 원 단위 거래는 인수를 완료하더라도 자금 조달 여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올해 복수의 매물이 등장하면서 M&A 시장이 활기를 되찾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거래 금액만 1조 원에 달하는 IMM PE의 산업용 가스 제조사 에어퍼스트 30% 지분 매각에는 맥쿼리·콜버그크래비스콜버츠(KKR)·브룩필드 등 글로벌 인프라 사모펀드가 원매자로 거론된다. 매각가 8000억 원 규모의 맘스터치도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있으며 복수의 재무적 투자자(FI)는 보령바이오파마(6000억 원) 경영권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전지와 반도체 관련 석유화학제품을 제조하는 재원산업은 4000억 원 투자 유치에 나섰다.
시장 분위기가 되살아나면 지난해 매각을 시도했다 접은 기업이 올해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8000억 원)은 인수 의향자 확보를 위한 마케팅을 지속하면서 재매각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급격한 시장 상황 악화로 거래 금액이 조 원 단위에 가까운 매물들은 매각이 지연되거나 무산됐다”며 “올해 시장 상황에 따라 잠재 매물 등이 재매각에 나설 경우 M&A 거래량이 회복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