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IRA가 촉발한 미-유럽 무역전쟁

김연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반도체·배터리 등 차세대 산업

IRA 타고 점차 美로 패권 이동

EU도 보조금制 개편 공언 맞불

韓, 정부·기업 뭉쳐 전략 세워야





새해에도 우리나라 수출과 무역 전선이 좀처럼 활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월 들어 20일 동안 무역적자는 103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무역적자 규모인 47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이 가운데 대중국 무역적자가 32억 달러이다. 월간 최대 적자였던 지난해 8월(94억 달러) 규모보다 크며 지난해 전체 무역적자(475억 달러)의 22%에 해당한다. 올해 연간 무역적자 정부 전망치는 260억 달러이다.



우리를 둘러싼 글로벌 무역 환경의 급변은 이미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미국과 유럽·중국 등 각국은 자국 첨단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반·배(반도체·배터리) 무역장벽’을 쌓는 데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어 놓은 단초를 제공한 계기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제정이었다. IRA는 흔히 탈중국 공급망 재편을 위한 것으로서 주로 중국을 타깃으로 한 법안으로 알려져 있다. IRA로 미국이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과도 무역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IRA는 공식적으로 기후 대응과 에너지 안보 법안으로 규정된다. IRA에 규정된 친환경 산업들에 대한 막대한 지원 및 보조금 때문에 미국보다 앞서가던 EU의 그린 딜(Green Deal)과 핏포 55(Fit for 55) 패키지 등이 빛이 바랠 위기에 처하게 됐다. IRA 때문에 (친환경) 모멘텀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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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주요 수출국으로 삼던 독일 자동차·전기차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늘리면서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유럽 최대 배터리 기업인 노스볼트도 독일 현지 배터리 공장의 착공을 연기하고 북미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2위 재생에너지 기업이자 스페인 최대 전력 기업인 이베르드롤라 역시 미국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그린수소 생산 설비 투자도 이제는 미국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됐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부터 IRA로 인한 시장 ‘왜곡’ 가능성을 제기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EU 자체의 국가 보조금 제도를 개편하고 녹색 기술로의 전환을 위한 재정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미국의 IRA는 무역 공정성을 해치며 유럽 내 일자리를 없애기 때문에 EU도 ‘유럽판 IRA’를 제정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기존 핵심원자재법(CRMA)과 EU 반도체법에 추가해 풍력과 태양광 등 유럽 클린테크 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탄소중립산업법’ 제정도 공식화했다. 탄소 무역장벽인 탄소국경제도(CBAM)도 1월부터 시범 운영하게 된다.

패권 전쟁을 위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퇴출시키려는 국가 안보적 목적을 앞세우는 미국과 공급망 내 탈탄소와 환경, 인권 규범 법제화를 내세우는 EU 틈바구니에 낀 우리나라는 이제 새로운 무역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가 하나가 돼 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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