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월급쟁이 근로자들을 빗대 흔히 '유리지갑'이라고 부릅니다. 국세청이 집안 숟가락 숫자까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득이 훤히 공개되다 보니 매년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너무 크다는 자조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서울경제신문이 따져본 결과 이는 그저 우스갯 소리가 아니라 실제 현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장인이 부담하는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어서입니다.
이런 기록은 '2022년 국세통계연보'에 상세히 수록돼 있는데요. 국내 근로자(1995만 9148명)가 2021년도에 납부한 근소세 결정세액은 52조 6986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를 총급여(807조 1988억 원)로 나눈 실효세율은 6.5%에 달해 전년(5.9%) 대비 0.6%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근로자가 벌어들인 돈에서 세금으로 나간 금액이 이만큼 더 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조세체계에서 근로소득세는 ‘소리 없는 증세의 1등 공신’으로 불립니다. 표면상 정부가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매년 명목임금이 상승하면 이에 따라 과세표준 구간이 자동 상향돼 세금 부담을 키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월급이 올랐다면 세금을 더 내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물가 인상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가령 급여가 5% 올랐어도 주택 임대료 등을 감안한 물가가 5% 동반 상승했다고 가정하면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이이 되는데요. 그런데도 명목소득 증가에 따라 더 높은 세율 구간에 들어가 세금을 더 내는 ‘인플레이션 증세’가 이뤄집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 감세를 외치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과표구간 기준 금액을 조정(최하위 구간 1200만 원 이하→1400만 원 이하, 2단계 구간 1200만~4600만 원→1400만~5000만 원 이하)했지만 이 정도로는 14년째 고정시켰던 과표구간과 세율을 적정한 수준에서 개혁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같은 기간 오른 물가를 반영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월급쟁이의 실질 부담을 깎아줬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뜻입니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21년도 귀속분 근소세 결정세액(근소세 산출세액-세액공제)은 52조 6986억 원으로 전년(44조 1640억 원) 대비 8조 5000억 원가량 늘었습니다. 이 기간 근로자 수와 총급여(750조 2650억 원→807조 1988억 원)가 모두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총급여 증가율(7.5%)보다 결정세액 증가율(19.3%)이 훨씬 높습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몇 년 동안 고용 흐름이 전반적으로 좋아 근소세 납부자가 늘었고 계속고용 인원의 경우 매년 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세금도 같이 상승하는 경향을 나타냈다”며 “우리나라 소득세 부담도 주요 국가 평균보다 낮아 세금이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부담은 5.3%(2020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3%보다 낮아 아직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지 않다는 설명인 셈입니다.
문제는 이런 설명을 인정하더라도 근소세 부담의 대부분이 고소득자에게만 쏠려 있어 상당한 조세 불균형을 낳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1년 기준 근소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근소세 면세자는 약 704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5.3%에 이릅니다. 이는 2019년 기준 미국(31.5%)이나 일본(28.1%)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치입니다.
반면 상위 10% 근로소득자들이 내는 결정세액은 매년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2021년 납부한 근소세는 38조 5759억 원으로 전체 세액 대비 73.2%에 달합니다.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이 기초부터 흔들리면 향후 조세 수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법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근로소득 공제에 상한을 두거나 특별공제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점차 세금 부담 인원을 늘려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특별공제 축소는 신용카드 사용액이나 교육비 등에 대해 공제를 줄여 결과적으로 과표를 높이는 방식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특별공제를 두는 이유는 출산율 상승 등과 같은 정책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인데 정책적 성과 없이 유지되는 공제제도가 너무 많다”며 “현실적으로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하 등 감세 정책이 어렵다면 세원을 넓히는 정책이라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