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중대재해법은 산재 사망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기업의 의무로 규정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4만 3162건. 지난해 한 해 동안 언급된 기사의 수만큼 중대재해법은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법 시행 1년간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가 무색하게 현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22년 644명이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법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근로자 기업에서는 2021년보다 산재 사고 사망자가 8명 늘었다. 수사 상황 또한 녹록지 않다.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하고 이로 인해 사망자가 나왔는지 인과관계를 정밀하게 따져야 한다. 의무 규정의 포괄성 등으로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상당한 인력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수사는 장기화되고 있다.
2024년 1월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인 66만 개 기업도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법 적용 대상이 지금보다 17배 이상 많고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취약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지난 1년간 법 적용의 실효성을 냉정하게 점검해봐야 한다.
한국에 비해 사고사망만인율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안전선진국이라 평가받는 영국도 중대재해법과 유사한 기업과실치사법을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과실치사법이 실제 적용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위험을 만드는 주체가 위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산업안전의 대원칙을 현장에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영국의 중대재해 감축 비결이라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0.29%)으로 감축하기 위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자기 규율과 엄중 책임으로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전환한다. 그동안 정부는 방대하고 세세한 규정과 처벌을 통해 기업의 안전 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규제했다. 앞으로는 위험을 생산하는 주체인 기업의 노사가 함께 위험 요인을 스스로 찾아내고 개선하도록 한다.
중대재해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처벌만으로 안전선진국을 달성할 수 없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법 제정의 근본 취지인 중대재해 근절을 위해 기업의 실질적 예방 노력을 견인하는 효과적 제재 방식, 안전·보건확보 의무의 명확화, 50인 미만 기업 적용 등을 위한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허물이 있으면 즉시 고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改過不吝)’는 옛말이 있다. 중대재해법도 예외는 아니다. 사고 없는 안전한 일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부와 노사 모두의 지대한 관심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