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달부터 무역적자가 127억 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무역적자액의 4분의 1 수준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이 업황 악화로 45% 급감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 수출입동향’에서 지난달 수출액이 462억 7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6.6%, 수입액은 589억 5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고 1일 밝혔다. 이에 따라 무역적자 규모는 126억 9000만 달러(약 15조 6000억 원)로 월간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무역적자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기존 최대치인 지난해 8월의 94억 300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현재 무역적자는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무역적자가 11개월 이상 지속된 것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 1월~1997년 5월 연속 적자 이후 약 25년 만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함께 반도체 불황기를 맞아 수출이 4개월째 감소한 영향이 컸다.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달 60억 달러에 그쳤다.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줄고 가격이 급락하며 전년 동월(108억 달러) 대비 44.5%나 축소됐다. 반도체 수출은 5개월째 줄어들고 있고 감소 폭도 전달(-27.8%)보다 커졌다.
반도체 외의 주력 수출 품목인 디스플레이(-36.0%), 철강(-25.9%), 석유화학(-25.0%) 수출도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다만 선박 수출은 고부가가치선 수출 증가에 힘입어 86.3% 증가했고 자동차(21.9%), 2차전지(9.9%) 수출액도 역대 1월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이 급감한 반면 3대 에너지(원유·가스·석탄) 가격 강세로 수입 규모는 여전히 컸다. 지난달 3대 에너지 수입액은 157억 9000만 달러로 지난 10년간 평균 에너지 수입액인 103억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반도체·철강 등 원부자재 수입은 줄었지만 에너지 수입으로 인한 무역수지 부담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2월 이후 나아질 것”이라며 사태 확산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월 무역적자는 동절기 에너지 수입 증가 등 계절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고 반도체 등 수출 가격 급락도 영향을 줬다”며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 등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 차츰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도체 업황 악화가 생각보다 심각해 무역수지가 상당 기간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대중(對中) 수출은 31.4% 줄어들며 8개월 연속 감소했고 아세안(ASEAN·-19.8%), 미국(-6.1%)으로의 수출도 줄어들었다. 정부가 ‘전략 수출국’으로 삼은 중동(4.0%)과 유럽연합(EU·0.2%)으로의 수출은 소폭 늘어난 정도다.
그나마 중국의 경기 회복은 우리 수출이 반등할 수 있는 주요 변수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기존의 4.4%에서 5.2%로 상향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중국이 글로벌 경제 회복에 기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중 간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언제나 불확실성이 높은 중국에 마냥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면서도 “지난해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많이 줬던 고금리 정책이 올 상반기에는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하반기에는 긍정적 요소도 일부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현재로서는) 경상수지마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수출 시장 다변화 등을 빼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