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와 월가를 중심으로 주요 기업의 대량 정리해고가 잇따르지만 정작 미국의 공식 고용지표는 사상 최고 수준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같은 현상은 해고에 나선 기업들의 이름값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착시일 뿐 실제로 산업계 전반의 신규 채용 수요는 여전히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현지 시간)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미국 포털 업체 야후는 디지털 광고 수익 감소에 대응해 이번 주 1000명을 감원하는 것을 포함해 올해 말까지 전체 인력의 20%인 1600여 명을 정리해고할 계획이다.
최근 감원 소식을 전한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월트디즈니는 전날 일자리 7000개를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고 줌비디오도 1300명 또는 직원의 15%를 해고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재취업 컨설팅 업체인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에 따르면 1월 한 달간 미국 내 정리해고 건수만 10만 2943건에 이른다. 전년 동월의 1만 9064건과 비교해 5배 넘게 급증한 규모다.
그럼에도 해고 현황의 가늠자로 불리는 미국 내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월 첫째 주 19만 6000건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주간 평균(22만 건)에 못 미쳤다. 청구 건수의 4주 이동평균값은 18만 9000건으로 2019년과 2022년을 제외하면 미국 인구가 지금보다 40% 적었던 1969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고용 시장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두 현상 간 불일치에 대한 설명 중 하나는 빠른 재취업 가능성이다. 정보기술(IT) 인력전문회사인 인사이트글로벌의 버트 빈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전역의 중소 IT 업체들이 채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팬데믹 이후 대기업에 밀려 고용을 늘릴 수 없던 이들은 지금 해고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개발자 등 전문 직군에서 압도적인 채용 수요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단순히 해고 근로자들이 실업수당을 청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 노동부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5주 미만 실직자 중 16.5%만 실업수당을 받았다. 만약 실직 이후 한두 달 내 재취업한다면 실직자의 80% 이상은 실업수당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규모 측면에서도 최근 알려진 빅테크들의 감원은 전체 고용 시장에서 미미한 수준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1월 기준 전체 고용 인구는 1억 5500만 명으로 IT 분야 고용자는 전체 민간 고용의 2%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10만 3000건인 1월 해고도 전체 고용의 0.001% 남짓한 수준인 셈이다.
반면 세탁소나 병원·호텔·레스토랑 등 일상 서비스 업종의 고용 증가는 IT 기업의 감원 규모를 상쇄하고도 남는 규모다. WSJ는 “서비스 분야에서는 팬데믹 첫 달인 2020년 3월에만 2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이후 다시 채용이 늘면서 최근 6개월간 119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