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골프에 메이저 대회는 4개지만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5의 메이저’라고 부르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있고 무엇보다 ‘팬들의 메이저’인 피닉스 오픈이 있다.
음주·고성방가 환영으로 세상에서 가장 떠들썩한 골프 대회가 된 피닉스 오픈이 10일(이하 한국 시간) 애리조나 TPC 스코츠데일(파71)에서 개막했다. 새벽부터 대회장 입구에 진을 치고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오픈런은 여전히 치열했다. 올해 대회는 특히 2·3라운드 입장권 매진을 이날 1라운드 경기 중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관중이 가장 많이 몰리는 현지 시간 금·토요일 티켓 수량에 제한을 걸어둔 것은 91년 대회 역사상 처음이다. 주최 측은 “대회 운영의 퀄리티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다. 우리는 골프장 안에서 팬들이 얻어가는 체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입장 제한을 두지 않으면) 관중 신기록이 나올 분위기지만 ‘팬들의 대회’라는 정체성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날을 대비한 조치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 총상금은 2000만 달러(약 250억 원), 이 가운데 우승 상금은 360만 달러(약 45억 원)다. 총상금을 두 배 이상 늘렸다. 대회 최종일인 13일 열릴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결정전 슈퍼볼의 장소가 애리조나 글렌데일인 것도 흥행 초대박의 기대 요인이다. 피닉스 오픈 현장에서 흥을 끌어올린 뒤 슈퍼볼을 즐기려는 스포츠 팬들이 스코츠데일에 몰렸다.
71만 9179명의 갤러리가 다녀간 2018년 대회가 가장 뜨거웠다. 당시 3라운드 관중만 21만 6818명이었다. 4라운드는 슈퍼볼 당일이라 관중이 분산된다. 주최 측은 2019년부터는 관중 집계를 하지 않는다. 자선이 취지인 대회인데 사람들의 관심이 갈수록 관중 수에만 집중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는 설명이다. 공식 집계는 하지 않지만 첫날 분위기만 봐도 올해 역시 관중 수가 최소 60만~70만 명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16번 홀(파3)이 늘 인기다. 1만 6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4층 규모의 스탠드가 순식간에 꽉 찬다. 진행 요원의 ‘조용히(QUIET)’ 팻말은 ‘장식’일 뿐 축구·야구장보다 더 큰 환호와 야유가 교차하는 곳이다. 홀인원이라도 터지면 맥주 캔이 날아들어 위험했던 홀이기도 하다. 올해부터는 모든 술 종류를 플라스틱 컵에 따라서 제공한다. 숫자 16과 콜로세움 모양을 새긴 이 초록색 컵은 팬들 사이에 소장 가치 높은 기념품으로 떠올랐다.
대회 주최사가 미국 최대 폐기물 처리 기업 웨이스트매니지먼트(WM)인 만큼 당연히 재활용 가능한 컵이다. 대회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전량 에너지나 비료 생산 등에 재활용된다.
경기에서는 닉 테일러와 애덤 해드윈이 5언더파 공동 선두에 나섰다. 둘 다 캐나다 국적이다. 이 대회에 다섯 번 출전해 매번 20위 안에 들고 그중 두 번이 톱 3인 잰더 쇼플리(미국)가 4언더파 공동 3위다. 세계 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2오버파로 고전했다. “티샷이 떨어지는 지점에 늘 페어웨이 벙커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매킬로이는 이맘때 다른 투어의 다른 대륙 대회에 참가하곤 했는데 PGA 투어가 올 시즌부터 출전 의무 대회를 지정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피닉스 오픈이라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스코어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매킬로이는 나무 바로 밑에서 묘기 샷으로 그린에 올리고 낮게 깔아 쳐 짧게 떨어뜨리는 드라이버 샷으로도 366야드의 장타를 만들어내 탄성을 자아냈다. 임성재는 1언더파로 마쳤고 12개 홀을 돈 김주형은 이븐파를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