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않는 옷을 바꿔 입는 21% 파티(지난 레터), 옷을 수선해 입도록 도와주는 서울 성수동 21%랩(다시 보기)을 기억하시나요? 헌 옷과 의류폐기물에 누구보다 진심인 ‘다시입다연구소(인스타그램)’의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패션 기업들이 싫어도 옷 생산을 줄이고 안 팔린 옷을 못 버리게 재촉하는 법을 고민하는 자리를 만드셨습니다. 이름은 ‘패션기업 재고 폐기 금지법을 위한 모임’으로 무척 엄숙하고 근엄했지만, 실제로는 ‘동락가’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비건 스콘과 차를 즐기면서 토론도 하는 서양식 파티 느낌이었습니다. 참가자들 대부분이 E(MBTI 테스트 결과 ‘외향적’이라는 의미)일 것으로 추정되는, 그런 분위기. 그렇지만 다들 이날의 주제에 대해서만은 진지했습니다. ‘의류 재고’, ‘의류 폐기물’이 뭐가 문제인지 정리해 봤습니다.
※기사 내 링크는 서울경제신문 홈페이지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화려하고 더러운 패션산업
매년 전세계적으로 1000억벌의 옷이 만들어지는데 이 중에서 73%는 팔리지 않고 소각·매립된다고 합니다. 왜 멀쩡한 옷을 묻고 태우냐고요?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하는 회사들은 안 팔린 옷들을 싸게 팔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재고 보관에 필요한 창고 이용료, 관리자 인건비 등등 오래 갖고 있을수록 손해이기도 합니다.
그 옷을 만드느라 들어간 노동력, 자원, 에너지가 너무 아까울 따름입니다. 기껏 생산한 옷을 결국 폐기함으로써 추가로 드는 자원과 에너지와 그로 인한 오염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죠?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나 생산되고 폐기되는지 통계조차 제대로 없다고 합니다. 다만 2020년 생활폐기물 통계를 보면 '분리배출된 폐의류 발생량'이 8만2423톤, 사업장 폐기물이 3628톤이라고. 대부분은 패션 재고, 폐원단으로 추정됩니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제재는 딱히 없는 상황. 패션재고 금지법 입법을 도와주실 '사단법인 선' 김보미 변호사님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기물관리법이랑 자원순환기본법에 관련된 권고가 있긴 있습니다. 그렇지만 "폐기물 감축과 자원순환을 위해 노력하길 권하지만 의무는 아닌" 수준이라고 합니다.
KBS 환경스페셜이 우리나라의 매출 상위 패션기업 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도 있습니다. 의류 재고를 소각하느냐는 질문에 4곳이 '소각한다', 각각 1곳이 '공개 불가'와 '응답 거부'를 택했고 '소각하지 않는다'는 답은 한 곳뿐이었습니다.
프랑스 "어디 마음대로 옷을 버려?!"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님은 그동안 21% 파티를 퍼뜨리면서도, 개개인이 오래 입고 바꿔 입더라도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싶어져서 패션 기업들을 제재할 수 있는 입법 활동까지 나섰다"고.
다행히 해외에 먼저 비슷한 법을 도입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판매되지 않은 의류를 기부(=재사용, 재활용)할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의류뿐만 아니라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비식품 제품' 모두에 해당되는 법. 폐기는 물론 금지입니다.
독일은 폐기 금지가 의무는 아닌데, 대신 폐기하는 분량을 문서화하고 정부에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기업들이 눈치를 보고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만든 겁니다. 벨기에의 경우엔 재고를 자선 단체에 기부할 때 부가가치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폐의류를 소각·매립하는 대신 기부해서 인센티브를 받도록 유도하는 거죠.
발표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희망이 생겼습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업들을 바꾸자"는 정 대표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장혜영 정의당 의원님은 "기업들이 수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부터 하나하나 이어가는, 지속가능한 운동을 하자"고도 하셨습니다.
지구용사님들이 다같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새 옷 구입은 참아보고, 구제 쇼핑(홍대 구제숍 후기), 김포 창고형 구제숍(다시 읽기)에 빠져보시길 권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