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정시 모집에 합격한 뒤 등록을 포기한 학생이 3개 학교 총모집 정원 4660명 중 1198명(25.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142명 증가했다. 서울대·연세대는 2차까지, 고려대는 3차까지 정시 추가 합격자가 발표된 14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학교별 추가 합격자는 연세대 596명, 고려대 468명, 서울대 134명으로 집계됐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의대 쏠림’의 부작용이 더 커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삼성전자 채용이 보장되는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조차 10명 모집에 11명이나 추가 합격자가 발생했다. 1차 합격자 모두 이탈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반도체 산업은 경제의 버팀목”이라고 강조하며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의 다짐과 대기업의 계약학과 설치 등이 무색하게 ‘의대 선호’의 위세는 여전하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 시대에 반도체 등 핵심 전략기술 인재 육성이 승부의 관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맹목적인 의대 편중 현상은 미래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지난해 평가 결과 한국의 대학 교육 경쟁력이 64개국 중 47위에 그친 것이다.
‘의대 블랙홀’의 병폐를 바로잡으려면 무엇보다 대학 입시 제도와 대학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우선 파격적인 장학금 지급 조치 등을 취해 의대 쏠림을 완화하고 고급 인재들이 이공계로 대거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대학에도 배분돼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에 쓰일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는 일도 시급하다. 수도권대학정원총량제도 완화해 첨단 산업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 14년째 동결된 대학 등록금에 대한 규제를 풀어 우수 교원과 첨단 장비를 갖출 수 있게 하는 개혁도 미뤄서는 안 된다. 대학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고급 인재 육성과 초격차 기술 개발을 주도할 수 있게 제도 전반을 개혁하지 않으면 미국·중국·일본 등 경쟁국들과의 첨단 산업 전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