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전기차 충전기도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최종 조립과 부품 제조의 일정 비율을 미국에서 해야만 정부 지원금을 받도록 했다. 전기차에 이어 충전소에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우선주의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백악관은 15일(현지 시간) 전기차 충전기에 적용하는 ‘바이 아메리카’ 세부 규정을 확정했다. 2021년 11월 시행된 인프라법은 전기차 충전기 구축에 75억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는데 이 지원금으로 설치하는 충전기는 자재 등을 미국산으로 써야 하는 바이 아메리카 규정을 적용받는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충전기의 최종 조립 및 충전기 내부를 감싸는 철제 외장의 제조를 미국에서 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또 내년 7월부터는 총부품 비용의 최소 55%를 미국에서 제조해야 한다. 충전기를 설치하는 기업들이 이 조건을 당장 맞추기가 어렵다고 하자 시행 시점을 내년 7월까지 유예했다. 현재 미국에는 13만 개가 넘는 공공 전기차 충전기가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충전기 50만 개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미 정부는 또 다양한 기업이 설치하는 충전기를 모든 전기차 운전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충전기의 접속 규격, 요금 지급 방식, 충전 속도와 전압 등에 대한 표준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이날 테슬라는 자체 충전소인 ‘슈퍼차저’와 ‘데스티네이션’ 충전소를 다른 회사 전기차에 일부 개방하기로 했다. 테슬라는 2024년까지 미국에 있는 충전소 중 최소 7500개를 모든 전기차에 개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 기업인 SK시그넷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SK시그넷은 현재 미국 텍사스 공장에서 주력 제품인 350㎾급 이상 초급속 충전기 생산 설비를 갖추고 올해 2분기 생산 가동을 앞두고 있다. 올해는 큰 문제가 없지만 내년 7월부터는 강철, 쇠, 건설 자재 등까지 현지에서 구매해야 한다. SK시그넷 관계자는 “미국에서 부품들을 조달하기 위한 서플라이체인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에서 부품들을 가져가서 조립하는 것보다 비용이 증가하다 보니 장기 구매 계약 등을 통해 원가를 최대한 낮춰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충전기 업체 애플망고를 인수한 LG전자도 이번 조치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는 입장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아직 전기차 충전기 사업의 북미 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단계”라며 “미 정부의 발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