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전기·가스료 속도조절에…뒤엉킨 '공기업 정상화'

◆공기업 개혁 로드맵 타격

尹 에너지 요금인상 최소화 언급에

"2분기 인상 사실상 물 건너갔다"

한전 올 10조 적자·가스公 미수금 12조

과도한 채권발행 나서야 할 수도

에너지 다소비 구조 개혁도 난관


윤석열 대통령이 전기·가스 등 에너지요금의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히면서 공기업 정상화 로드맵이 뒤엉키고 있다. 요금의 단계적 정상화가 쉽지 않아진 데다 내년 총선과 맞물려 올 하반기부터 선거 정국이 본격화될 경우 공기업 재무 개선 작업은 또 뒷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한국전력의 지난해 적자가 30조 원을 넘길 것이 확실시되고 유럽 전쟁도 진정될 기미가 없는 가운데 한전채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가격 현실화를 통해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16일 전력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다음 주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다. 적자 규모는 30조 8900억 원 수준이 예상된다. 1년 전의 5배가 넘는 적자를 내게 된 셈이다. 한전뿐만이 아니다. 한국가스공사의 누적 미수금 역시 2021년 1조 7700억 원에서 1년 만에 9조 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12조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전기요금을 ㎾h당 13원 10전 올리고 가스요금을 1분기 동결하면서 2분기 이후 인상 요인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2분기 전기·가스요금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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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한전·가스공사 경영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올해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은 ㎾h당 51원 60전, 가스요금은 MJ(메가줄)당 39원이었다. 이조차도 2026년까지 한전의 누적 적자와 가스공사의 미수금을 해소하는 ‘속도 조절’을 가정한 수치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전날 비상경제회의에서 공공요금 인상은 하반기로 미루고 에너지의 경우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언급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에너지요금 결정의 키를 쥔 기획재정부와 산업부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실적을 고려할 때 동결은 쉽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제한적 인상’이 유력하다. 내부적으로는 선거 일정 등을 감안하면 올 2분기가 대폭 인상의 적기였는데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말까지 나온다.

산업부가 내놓은 적정 인상액이 지난해 인상액보다 훨씬 크다는 점도 고민이다. 지난해 전기요금은 ㎾h당 19원 30전, 가스요금은 MJ당 5원 47전 올랐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에너지요금 인상만으로도 민심이 들끓고 있는데 산업부가 제시한 요금 인상 적정액은 전기요금의 경우 지난해 인상액보다 2.5배, 가스요금은 7배 이상 많다”며 “이를 다 수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문제는 에너지요금의 찔끔 인상이 결국 또 다른 폭탄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공기업의 채권 발행 물량이 많아져 자본시장을 교란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고 잠시 틀어막은 물가 인상이 뒤늦게 이뤄지는 폐단으로 나타날 수 있다. 국회에서 한전채 발행 한도를 증액하는 한전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가까스로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채권 발행으로 수십조 원의 적자를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공들였던 ‘에너지 효율화’ 움직임도 무산될 수 있다. 산업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난방비 폭탄’ 프레임이 정부에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난방비를 절약하는 법이 잇따라 보도되는 등 수요 감축을 유인한 측면도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남동발전 등 7개 전력 공기업은 지난해 사업 조정, 비(非)핵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총 5조 3000억 원 규모의 재정 건전화를 달성했다. 이들 전력 공기업은 올해도 3조 2000억 원 이상의 재정 건전화를 이룬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핵심인 에너지가격 정상화 없이는 이 같은 계획 달성은 요원하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요금 현실화를 추진하되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두텁게 하고 국민들에게 위기 상황인 만큼 인상이 불가피하며 절약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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