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었던 아파트 거래 시장이 연초 일부 풀리는 가운데 지역 대장주로 꼽히는 신축 대단지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1년 고점 대비 5억~7억 원씩 떨어진 ‘낙폭이 큰’ 아파트만 거래가 이뤄졌다. 수요자들이 이른바 ‘낙폭 과대 우량주’만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에서는 24건의 매매 거래가 이뤄졌는데 이는 송파구 전체 거래 128건 가운데 18.8%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2018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헬리오시티는 총 9510가구 규모로 국내 최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거래절벽’이 극에 달했던 지난해 하반기에는 6개월간 단 45건만 거래됐었다. 최근 거래가 늘어나는 이유는 가구 수가 많은 만큼 신고가 대비 낙폭이 큰 매물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대단지는 중소 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물이 많아 매도자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급매물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 단지의 전용면적 84㎡는 2021년 9월 23억 8000만 원(30층)까지 올랐지만 지난해 반복된 금리 인상 및 집값 하락 우려에 연말에는 매매 호가가 15억~16억 원까지 내려갔다. 연초 들어 저층은 15억 3000만 원(1층)~16억 3000만 원(2층), 중층은 17억 원(12층)에 매매됐다. 송파구 가락동에서 공인중개업을 하고 있는 A 씨는 “국민평수인 전용 84㎡ 매물이 16억 원 아래로 나오자 매수 문의가 빗발쳤다”며 “이 매물을 시작으로 급매가 꾸준히 나오자 고점 대비 집값이 충분히 하락했다는 인식에 실수요자들이 매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지역 신축 대단지도 비슷한 추세다. 2020년 5월 준공된 양천구 신월동 ‘목동센트럴아이파크위브(3045가구)’는 지난해 하반기에는 매월 1~4건의 거래만 이뤄졌지만 올해는 1월에만 무려 17건의 매매 계약이 체결됐다. 다만 2021년 고점 대비 약 6억 원 가까이 떨어진 가격에야 거래가 이뤄졌다. 실거래 기준 2021년 14억 3000만 원(8층)까지 올랐던 전용 84㎡가 올해 1월에는 8억 2400만 원(3층)까지 하락했다. 강동구에서도 고덕그라시움(2019년 입주, 4932가구), 고덕아르테온(2020년 입주, 4066가구)이 1월에만 각각 13건씩 거래되며 강동구 거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고덕그라시움 84㎡는 2021년 10월 당시에는 20억 원(13층)에 신고가를 썼지만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최저 호가가 14억 원 수준까지 내려갔다. 결국 지난달 27일에는 14억 5000만 원(6층), 28일에는 14억 4700만 원(13층)에 연쇄적으로 거래가 체결됐다.
강남에서도 신축 대단지 급매가 소화되면서 낙폭이 큰 거래가 계속되고 있다. 2019년 준공한 1957가구 규모의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 59㎡는 1월 12일 16억 7000만 원(5층)에 팔렸는데 이는 2021년 8월 23억 원(12층)에 거래된 신고가보다 6억 3000만 원 낮다. ‘개포래미안포레스트’ 59㎡ 역시 2021년 10월에는 22억 4900만 원(9층)에 팔렸지만 지난달 5일에는 7억 원 가까이 하락한 15억 8000만 원(13층)에 거래됐다.
부동산 빙하기에 급매물은 늘어가지만 지역 대표 단지로 꼽히는 대단지 신축 아파트에만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부동산 시장이 변동성 높은 금리의 영향을 받아 위축된 상황에서는 매수자들이 주거 만족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단지 규모’와 신축 여부를 크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축 대단지를 중심으로 거래가 급증하며 서울 아파트 월간 거래량도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 서울 아파트 거래는 7개월 만에 1000건을 돌파한 데 이어 17일 기준 1284건까지 늘었다. 올해 초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잇따라 완화하고 시중 대출금리도 소폭 낮아지며 ‘급매’가 소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15억 원 이상 대출 허용, 규제지역 해제, 금리 인상 둔화 등의 요인으로 매수 움직임이 급매물 위주로 이뤄지면서 12월보다 1·2월 아파트 거래량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특히 대단지·신축·호재가 풍부한 지역 위주로 수요가 집중되면서 급매 소진 이후 약간 가격이 오른 매물이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