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챗GPT 열풍에 반도체 수요 증가…고성능 D램 초격차 사활 걸어야"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

반도체 국가 대항전 속 메모리 1위도 장담하기 어려워

현재 구조로는 TSMC와의 격차 좁히기 사실상 불가능

인재 양성 위해 대학 R&D 투자 집중해 교수진 늘리고

‘대기업 특혜’ 낡은 이념 벗어나 K칩스법 조속 처리해야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가 2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가 2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챗GPT 열풍으로 반도체 수요가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고성능 D램 분야 등에서 압도적 기술 초격차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우리 경제의 최대 수출 품목인 K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기반이 위협받는 와중에 주력인 메모리반도체마저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 열풍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관측도 나온다.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낸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는 2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챗GPT의 인기에 힘입어 반도체 수요가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고성능 D램 분야 등에서 압도적인 기술 초격차를 지켜내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반도체 국가 대항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의 강점인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1위도 더 이상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반도체 산업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면 대학에 투자를 집중해 교수진부터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 위기론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이 주력해온 메모리반도체는 경기 흐름을 많이 타 올해 상반기까지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오랜 기간 반도체 특유의 경기 사이클을 겪어왔기 때문에 호황과 불황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신기술 도입이나 체질 개선 등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충해야 한다.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우리의 최대 강점인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의 기술 초격차를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 경쟁사보다 먼저 최첨단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양산하는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 메모리반도체에 새로운 가치와 기능을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1위라는 말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공개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선두 업체가 한 발 앞서 신기술을 내놓는다는 관행마저 깨졌다. 우리로서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최근 챗GPT 등 AI 기술이 산업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데.

△챗GPT에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차세대 전략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챗GPT 수요 증가는 메모리반도체 시장 확대로 이어지면서 반도체 산업 재편을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메모리반도체와 AI 프로세스를 결합한 지능형메모리(HBM-PIM)는 갈 길이 멀다고 봐야 한다. 다양한 공정이 도입됐지만 아직 GPU의 성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양산 체제를 갖추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한국이 반도체 설계 역량에서 뒤처져 있다는 지적도 많다.

△우리가 가장 뒤떨어진 분야가 반도체 설계 부문이다. 정부가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인 설계 역량을 키우겠다며 20년에 걸쳐 내놓은 지원책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현재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150개사의 매출은 10조 원 수준으로 전체 반도체 시장(2021년 기준)의 5%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선순환 구조를 갖추기에는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

-삼성전자가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TSMC는 6만여 명의 엔지니어를 갖추고 한 해 투자비로 약 45조 원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산업 생태계도 TSMC의 강점이다. 삼성전자도 전체 투자 규모에서는 TSMC와 비슷하지만 시스템반도체 투자 규모는 15조 원에 머물러 있다. 투자비나 인력 등 현재의 구조로는 TSMC와 격차를 줄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메모리반도체에 집중하며 기술 격차를 벌려야 한다.

-그래도 시스템반도체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시스템반도체는 생산 품목이 워낙 다양한 데다 소량 생산이라 우리 산업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시장 규모가 1조 원이 되지 않는 분야도 많다. 문제는 시스템반도체에 투자하느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TSMC와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쏟아부으면 당연히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시스템반도체 육성 같은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메모리반도체 시장 전망은 어떤가.



△2010년 이후 10년 동안 전체 반도체 시장은 1.7배 정도 커졌다. 반면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3.3배나 늘었다. 향후 10년 동안 이런 추세가 유지될 것이다. 현재 전체 시장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5%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메모리 강국의 위상을 지켜나가야 한다. 메모리반도체를 더 발전시키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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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위해 어디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나.

△반도체의 미래는 크게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스케일링이라고 해서 제품을 계속 작게 만들며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새로운 기능과 성능을 도입하는 것이다. 예컨대 PIM에 중앙처리장치(CPU)를 결합해 예전에 없던 분야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개척해나가는 원동력은 바로 우수한 인재들이다.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핵심 두뇌 양성이 절실하다. 국내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정부 규제에 막혀 있어 안타깝다. SK하이닉스가 2020년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한 것이 국내 반도체 업계의 마지막 M&A 사례로 기록될 듯하다.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일수록 고급 인재 양성이 더욱 절실한데.

△정부가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해 신기술을 개발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정부가 집중할 분야는 바로 인재 양성이다. 대학 등에 R&D 자금을 집중 투입해 학생들의 현장 적응 시간을 줄여줘야 한다. 흔히 대안으로 거론되는 반도체계약학과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교수진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인접 학과 교수들이 겸임하다 보니 교육 부실을 초래한다. 통상 5년 단위로 계약하는 구조에서 기업의 사정에 따라 해당 학과가 없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학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 330여 명의 서울대 공대 교수 가운데 반도체 전공 교수는 10여 명밖에 안 된다. 더 늘리고 싶어도 학교 측에서 추가 배정을 꺼린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원생만 80명이 넘어 앉을 자리조차 마련하기 어렵다.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려 반도체 분야 교수에게 더 많은 연구비를 지급함으로써 교수들이 자연스럽게 반도체를 연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대학도 달라져야 한다고 건의했더니 공감을 표시하더라.

-반도체를 국가안보를 지키는 전략산업이라고 일컫는데.

△지금은 정치와 국제 정세, 미래 기술이 접목된 ‘테크노폴리틱스(Techno-Politics)의 시대’다. 기술이 국가 경제뿐 아니라 안보까지 좌우하는 ‘기술안보’ 시대에 돌입했다. 경기 이천(SK하이닉스)과 평택(삼성전자)을 잇는 ‘신(新) 애치슨라인’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그런 가치를 뉴욕이 대체하는 순간 애치슨라인은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바뀔 수 있다. 지금 점점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쟁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정부 지원이 뒤떨어진다는 비판이 많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백업 구조를 만들기 위해 삼성이나 TSMC의 미국 공장에 투자금의 25%를 돌려주고 있다. 엄청난 특혜다. 마이크론이 뉴욕에 공장을 짓는 것도 파격적인 인센티브 때문이다. 반면 우리 사회에 폭넓게 자리잡은 대기업에 대한 반감은 큰 문제다. 지금은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대항전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대만은 여름에 가뭄이 들자 농업용수까지 끌어와 TSMC 공장에 공급했다.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떠받드는 대만은 TSMC 신공장 건설을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도태될까 두렵다. 지금이라도 전략산업을 전폭 지원하기 위한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공장을 지을 때 전기를 끌어오거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것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토지 보상, 용수 인허가 등에 발목이 잡힌 SK하이닉스 용인 공장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소한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의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국회도 전략산업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할 텐데.

△국회의원들은 나라 전체보다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에 극단적 반감을 갖고 있다. 반(反)기업 정서는 행정부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공무원들이 여전히 국회의 눈치를 보고 있다. 여당 의원들도 산업구조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 실망스럽다. 지금은 대통령만 혼자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 같다. 국회는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추가로 높이는 내용의 ‘K칩스법’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He is…

1964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무기재료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과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공정개발팀 선임연구원을 거쳐 1998년부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2014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2020년 반도체 소자 및 공정 분야의 연구를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대 석좌교수로 선정됐다. 영국 왕립화학회 석학 회원이자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정상범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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