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여보, 난 미쳐가고 있어"…러 병사들 '통화 녹취록'

민간인 학살·약탈 고백 담겨…"이런 지옥 본 적 없다"

우크라 키이우서 공습경보에 지하철 객차로 모여드는 여행객들. AP=연합뉴스우크라 키이우서 공습경보에 지하철 객차로 모여드는 여행객들. AP=연합뉴스




“사람들이 내가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해. 여기 같은 지옥은 본 적이 없어.”



23일(현지시간) AP통신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군이 본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한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자국 기지국을 통하는 러시아 병사들의 휴대전화 통화를 도청해 자국 군에게 주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녹취록은 러시아군으로부터 도청한 2000여건의 통화 내역 중 일부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에 주둔한 러시아 병사 A는 현지에서 훔친 전화기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전쟁에 공포감을 드러내고 민간인을 사살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쇼핑몰에서 약탈을 벌이고 있다고 당당히 밝히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들 통화 내용엔 지난해 3월 키이우 외곽 소도시 부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정황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약탈행위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병사 A는 아내에게 자신이 민간인을 죽였다고 말하며 자신이 살아서 집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어둠 속에서 술에 취한 채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막심은 “술을 마시면 스스로를 어떻게 지키겠냐”는 아내의 말에 “여기선 모두가 그렇다. 술 없인 불가능하다. 오히려 민간인을 쏘기 더 쉽다”며 “이 얘긴 하지 말자. 돌아가면 이곳이 어떤지, 왜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는지 말해주겠다. 여기 같은 지옥을 본 적이 없다. 난 정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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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살에 대해 괴로움을 토로하던 그는 아내에게 자신이 우크라이나 쇼핑몰에서 훔친 물건들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자신이 다른 러시아 병사들과 함께 쇼핑몰에 총을 쏘고 다니면서 금과 현금 등을 훔쳤다는 것이다.

A씨는 “쇼핑몰 보석 가게에 금고가 있었는데 그걸 우리가 깨뜨려서 열었다. 그 안에 있는 목걸이, 팔찌, 반지 이런 걸 훔쳤는데 계산해보니 1g당 3000루블(약 5만원)이면 한 350만루블(약 6000만원) 정도 되는 거 같다”며 “우리가 할 일이 없어서 쇼핑몰 돌면서 약탈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전쟁 초기 자신의 부대가 사살한 18세 우크라이나 병사에게 연민을 느끼던 19세 러시아 병사 B는 점차 우크라이나에서의 민간인 사살과 약탈 생활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부차에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 병사 B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민간인들은 도망치거나 지하실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거리에 돌아다니는 이들은 ‘진짜 민간인’이 아니”라며 이들이 우크라이나군에 협력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군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 기도하는모습이다. 로이터 연합뉴스우크라이나 군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 기도하는모습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병사 B는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다섯 번이나 죽을 뻔했다고 토로하면서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 군인들이 병가를 얻어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총을 겨눈다는 이야기도 털어놨다.

병사 B는 “엄마,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험금을 타내려고 왼쪽 허벅지 아래쪽에 총을 쏜다”며 “어떤 사람들은 전쟁이 너무 무서워서 그냥 무작정 떠나려고 자해하기도 해”라고 말했다. 여자친구와의 통화에서도 “발에 총을 맞고 집에 갈 수 있었던 친구들이 부럽다. 발에 총알이 박히면 목발을 짚고 4개월 동안 집에 있을 수 있다”며 “굉장한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병사 C의 통화 내용엔 부차에서 벌어진 학살 내용이 담겼다. 이반은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난 부차에 있어. 필요하다면 (사람들을) 죽일 거야. 해야 한다면 해야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통화에선 “당분간 이쪽에 있을 거야. 우크라이나 전체를 싹 밀어버릴 때까지 우린 아마 여기 머물게 될 것”이라며 “아마도 우크라이나군은 우릴 끌어내릴 거고, 우린 키이우로 가게 될 것이다. 저 해충들을 모두 제거할 때까진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이 같은 대화 내용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을 갖고 있었던 이들이 어떻게 타인에 대한 끔찍한 폭력에 연루되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며 전쟁의 참상을 보도했다.


황민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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