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건물 2층.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엄청난 수의 장난감을 보고 말문이 막힌다. 로봇부터 레이싱카·인형·블록·딸랑이까지 없는 게 없다. 일반 장난감 가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모두 중고품이라는 점과 조만간 모두 해체될 운명이라는 사실이다. 직원들도 영업 대신 전기 드릴로 쉬지 않고 작업을 한다.
사무실 주인은 장난감 재활용 사업을 하는 박준성(53) 사단법인 트루의 사무총장이다. 버려지는 장난감을 줄여 환경문제를 해결하자는 목표를 갖고 1998년 트루의 전신인 ‘금자동인’을 설립한 후 25년 외길을 걸어왔다.
하는 일은 간단하다. 기업이나 가정에서 기부한 장난감을 중고로 팔거나 분해해 ‘쓸모’라는 환경 교육 프로그램 교구 또는 재생 플라스틱으로 활용한다. 장난감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자 제품부터 고객이 애프터서비스(AS)를 맡기고 찾아가지 않거나 대여점에서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되는 경우까지 온갖 사연을 다 갖고 있다. 그는 “우리가 보유한 장난감은 업체에서 기부된 것만 12만 개”라며 “가정에서 들어온 것과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20만 개, 무게로 치면 7톤이 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사무총장이 장난감 재활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냥 버려지는 제품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다. 버려지는 이유는 많다. 남이 쓰던 장난감을 자식들에게 주고 싶지 않다는 부모 심리도 있고 재활용할 때 너무 손이 많이 간다는 점도 있다. 게다가 재활용품 수집장에서도 건전지로 인한 화재 위험 때문에 기피 대상 1호였다. 장난감이 ‘환경 악당’ 취급을 당하는 이유다.
박 사무총장이 장난감 재활용에 적극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꿈이자 친구이자 사랑이다.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안전하고 정교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이유 하나로 공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플라스틱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장난감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문제의 본질은 아이들의 친구이자 사랑이라는 의미가 사라지고 단순한 소비와 욕망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박 사무총장이 세계 유일의 장난감 재활용 사업자로 남게 된 데는 서글픈 이유가 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장난감 제조에 들어가는 재료는 플라스틱뿐이 아니다. 나사나 고무 등도 사용된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손으로 분리하려면 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는 “장난감을 분해해 플라스틱 1㎏를 얻는 데는 30분 정도 걸리지만 수집상에게 넘겨 받는 돈은 ㎏당 50~100원 정도”라며 “요즘은 전동 드릴을 이용해 작업 효율이 높아졌지만 그래도 하루에 버는 돈은 2000원이 고작”이라고 설명했다.
버려지는 장난감에 가치를 부여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기부된 장난감 중 30%는 재사용하고 60%는 ‘쓸모’라는 장난감 학교의 환경 교육 프로그램 재료 또는 재생 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한다”며 “어쩔 수 없이 남게 된 나머지 10%는 결국 폐기 처리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장난감은 사회와 기술의 축소판이라고 역설한다.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분해하면 전기차와 90% 이상 구조가 똑같다고 한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전기차는 장난감 자동차를 뻥튀기 기계에 넣어 뽑아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안을 들여다보면 놀랄 만큼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실생활에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술과 이야기도 여기에 담겨 있죠. 장난감이 그냥 버려져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요즘 박 사무총장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대체불가토큰(NFT)이다. 장난감 부품을 녹여 만든 플라스틱 패널에 그림을 새겨 작품으로 만든 후 이를 디지털화한 NFT로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준비도 어느 정도 돼 있는 상태다. 그는 “2년 후 1000개 작품을 선보이는 대형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며 “앞으로 재단에 대한 후원이 도움이 아니라 투자가 될 수 있도록 인식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