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 등 자동차주의 질주 본능에 탄력이 붙고 있다. 그간 주가 상승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진 차량용 반도체 부족 등 공급망 문제가 풀리고, 판매 실적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호실적에 힘입어 주가 상승세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동차 업종을 모아놓은 KRX자동차 지수가 올 들어서만 18.6% 급등했다. KRX 자동차 지수에는 현대차·기아·한온시스템 등 16개 상장사가 포함돼 있다. KRX 업종 지수 중 자동차는 올 들어 상승률도 1위를 달리고 있으며 KRX 지수 전체를 통틀어도 KRX 300 소재(21.77%)에 이어 상승률 2위다.
종목별로 기아는 지난해 말 5만 9300원에서 7만8100원으로 31% 급등했다. 현대차도 같은 기간 16.5% 뛰었다. 부품주도 동반 질주하는 모습이다. HL만도(204320)는 최근 3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주가가 약 5개월 만에 5만원선을 넘어섰다. 현대차에 전기차용 배터리팩을 공급하는 성우하이텍(015750)은 올 해 45%나 치솟았고, 한국타이어는 같은 기간 22.5% 올랐다.
외국인과 기관이 함께 매수에 나서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올 해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2710억 원, 230억 원씩을 사들였다. 기아도 외국인이 1170억 원을 담았다.
자동차주는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 완성차 생산에 차질을 준다는 우려가 주가를 짓눌렀다. 경기침체로 신차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부담이 됐다. 이에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29일 나란히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도체 공급난이 풀리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판매량이 회복되며 경기 침체로 수요가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걱정도 걷히는 모습이다. 2월 글로벌 판매 실적을 보면 현대차가 32만 8000대로 전년 동월 대비 7.3% 증가했다. 기아는 25만 4000대로 같은 기간 14.7% 늘었다. 내수 판매는 현대차와 기아 각각 22.6%, 26.7%씩 큰 폭 증가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기아가 연초 제시한 판매와 수익 목표가 다소 공격적으로 보였지만 최근 실적을 통해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 인하 압력도 완화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주요 업체들이 물량 보다 수익에 신경을 쓰면서 예상보다 자동차 시장의 경쟁 부활 속도와 가격 하락 추세가 늦어지고 있다” 면서 “3월 주주환원 구체화, 4월 인베스터 데이, 1분기 실적 발표 등 주요 이벤트가 이어지며 주가 반등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주주 친화적인 배당정책도 투자 심리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투자자들이 배당액을 먼저 확인한 후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배당 절차를 개선하기로 했다. 주주 환원을 늘리기 위해 배당금을 50% 상향하고, 총 발행주식 중 1% 규모의 자사주 소각도 계획대로 진행한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도 부각되고 있다. 현대차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2배, 기아는 0.65배다. PBR이 1보다 작으면 저평가된 기업, 1보다 크면 고평가된 기업으로 볼 수 있다. 임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시총 상위 11개 기업 중 현대차와 기아는 가장 저평가된 종목”이라며 “1분기 실적으로 달라진 체력이 입증되면서 기업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