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6일 공식 발표한 ‘징용 해법’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라는 제3자를 통한 대위변제로 요약된다. 일본 피고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판결금과 배상 지연이자를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대신 변제하는 방식이다. 재원은 한일 민간기업의 자발적인 기부로 조성한다.
대신 한국 대법원 판결상 배상 책임을 안고 있는 일본 피고 기업은 한일 미래 세대를 위한 협력 기금 조성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비판을 내놓는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피해자와 피고 기업 입장을 모두 고려한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박진 “물컵 절반 이상 찼다…日 호응 따라 더 채워질 것”=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회견을 열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내용의 정부 해법을 발표했다.
외교부는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격과 국력에 걸맞은 대승적 결단”이라며 “우리 주도의 해결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일부 피해자 측이 요구한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가 정부 해법에 담기지 않은 데 대한 해명으로 읽힌다. 이들 기업 대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봤던 포스코 등 국내 기업이 재원 마련에 기여할 확률이 크다.
이를 두고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 대해 박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물컵에 비유하면 물이 절반 이상 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이라며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피고 기업이 재원 마련에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일본 피고 기업이 향후라도 배상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는 처음부터 허들이 굉장히 높은 조건이었다”며 “간접적으로라도 배상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인정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피고 기업은 (배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 내 기본적인 분위기와 환경 자체가 (한국에) 양보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한국 정부의) 협상 환경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이 가운데 일본 피고 기업이 배상 명목으로 자금을 지출할 경우 이사진이 배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일본 피고 기업은 그간 판결금을 단 한 푼도 내지 못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한일 경제계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래청년기금(가칭)’을 조성해 뜻이 있는 일본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
◇“대승적 결단”vs“굴욕 외교” 반응 엇갈려…정부 “피해자 설득 계속”=일본 피고 기업의 불참에도 우리 정부가 징용 해법을 발표한 것은 지난 정부 동안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한국이 잃은 게 너무 많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그간 한일 관계에서 한국은 도덕적으로 우위를 점했지만 지난 정부 기간에 뒤집어졌다”며 “이후 자잘하게는 국제기구 선거부터 크게는 대북 정책 추진 등에서 한국이 잃은 게 너무 많았다”고 회상했다. 박 장관도 “국익 차원에서 국민을 위해 (한일 관계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향후 일본과 안보·문화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고 인적 교류를 보다 활성화할 방침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과학 분야에서 협력할 부분이 많다”며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하고, 발표하고, 이행해나가는 과정에서도 한일·한미일 협력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징용 해법에 반대하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계속 설득하기로 했다. 이 고위 당국자는 “법리적으로는 끝까지 판결금을 수령하지 않을 경우 공탁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면서도 “한 분이라도 빠지지 않고 판결금을 수령하시도록 노력해나가겠다는 게 현재 정부 입장”이라고 전했다.
한편 정부 해법에 대한 여야 반응은 엇갈렸다. 국민의힘은 “미래와 국익을 향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치하한 반면 야당은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의 치욕이자 오점”이라고 평가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