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같은 그림이다. 초록의 밭이 내려다보이는 화폭에는 듬성듬성 빨간 지붕의 집과 분홍 나무가 보인다. 그림 속 배경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명식 작가의 거처가 있는 마을이다.
김명식 작가가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주제의 개인전을 연다. 평생 80회, 연간 2회의 전시회를 여는 75세 노작가의 근면함에 비하면 다소 따뜻하고 여유로운 주제라 할 수 있다.
김 작가는 주로 ‘집’을 그린다. 그가 그린 집은 사실 집이 아니다. ‘얼굴’이다. ‘집 작업’은 부산 동아대 교수 시절인 1999년 처음 뉴욕을 여행하며 시작됐다. 작업실로 가는 전철 안에서 바라본 작은 집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로 느껴진 것. 다양한 색의 집은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는 뉴욕 풍경을 상징한다.
특히 그림 속 집은 색이 다르고 크기는 같다. 그는 뉴욕이라는 다양성의 총체와 같은 거대한 도시에서 집을 통해 ‘인종 차별이 없는 평등’을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 시리즈에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East side story)’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전 그의 작품 ‘고데기(현 강동구 고덕동의 옛 이름)’는 어둡고 침침하다. 빨강, 노랑, 초록 등 원색이 화폭 여기저기에 담긴 뉴욕시절의 그림과 달리 고데기 시절의 그림은 주로 갈색, 회색 등 어두운 색이 화폭에 담겨있다. 뉴욕 생활이 그의 작품 세계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리즈로 김 작가는 2005년 1월 뉴욕 5번가의 리즈 갤러리 ‘아시아 3인전’에 초대됐고 뉴욕, 마이애미, 상하이 등 국경을 넘나들며 주요 갤러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리즈는 일본에서 이어진다. 일본에서 그린 작품은 이전의 화려함을 다소 억누르고 완성도에 충실했는데 변화된 방식은 2010년 1년간 일본 아트랜드갤러리(시코쿠)를 시작으로 후쿠오카, 고베, 오사카, 동경, 삿포로 등에서 순회전을 열며 화제를 모았다. 이번 개인전은 뉴욕→일본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시즌3에 해당한다. ‘컨트리사이드(country side)’ 시리즈로 명명된 시즌3의 작품들은 2005년 부산 동아대를 정년 퇴임하고 용인의 전원으로 작업실을 옮긴 후 시작된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다. 전원 생활인만큼 대부분 그림은 녹색이다. 작가는 더 이상 집을 화폭 가득 담지 않는다. 커다란 배경에서 집이 소품처럼 위치해 있을 뿐이다.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그의 이번 개인전 작품을 두고 “자연의 품에 안긴 집의 포치는 전통 산수화의 점경인물을 닮았다”고 표현했다.
그간 작가가 그린 그림은 병원이나 대중적인 공간에 많이 전시됐다. 깊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다른 현대미술과 달리 직관적이고 따뜻한 특징 덕분이다. ‘컨트리사이드’는 이러한 특징을 이전보다 더 강화 했다. 작가 스스로도 “개인적 감성의 치유나 힐링에 어울리는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그의 작품은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작가는 전시회를 열면 반드시 신작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열정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덕분에 내년에도 전시회 일정이 이미 예정돼 있다. 일본의 메이저급 갤러리인 미조에 갤러리에서 초대 개인전을 여는 것. 도쿄와 후쿠오카에 단독 전시장을 운영하는 대형 갤러리다. 작가는 이 갤러리에서 5회째 개인전을 연다.
청작화랑 개인전 ‘행복이 가득한 집’ 전시는 9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