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반일·혐한 '뇌관' 여전…"갈등 조율할 상설채널 구축해야"

[리스타트 한일협력] <중> 신뢰부터 다시 쌓자

독도·역사왜곡 문제 등 갈등 반복

정상간 합의해도 번번이 무력화

"민·관·정·학계 참여 협의체 가동

현안 포괄·지속 관리로 관계 개선"

외교차관급 전략대화 재개 예정

고령화 등 공동 문제 해법 공유

국민간 인식차이 좁히기 노력도


윤석열 정부가 6일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우리 정부 주도로 풀기로 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격한 해빙기에 돌입하고 있다. 이에 화답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기존 정부들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는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양국 사이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또 다른 갈등 현안들이 산재해 있다. 이번 징용 배상 문제를 풀었다고 해도 언제든지 다시 양국 관계를 경색시킬 악재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관계 개선을 이루려면 여러 분야에서 양국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상시적이고 포괄적인 갈등 관리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 학계, 경제계, 전문성 있는 민간 기관 및 단체 등이 모두 참여해 갈등 이슈를 협의하고 해결 방향의 공감대를 선제적으로 만들어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사회·안보 곳곳 갈등 현안…정상 합의 ‘흔들’=민·관·정·학계 등이 참여하는 갈등 관리 메커니즘이 필요한 것은 정상 간 합의 등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의 톱다운(top down·하향) 방식의 한일 외교에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한일 정상 간 합의는 정권 및 정치적 지형이 바뀌거나 양국 국민 간 정서 기류 등에 변화가 생기면 흔들리고는 했다.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대표적 사례다.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10월 8일 일본을 3박 4일간 국빈방문해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와 회담하고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양국 정상 간 관계 개선에 대한 합의는 이뤘지만 정치적 합의에 그쳤을 뿐 양국 사회 전반에 남은 갈등은 해소되지 못했다.

특히 한일 간에는 매년 2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3월 일본 교과서 검정, 4월 일본 외무성의 외교청서 발간 등 ‘악재 달력’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한국의 반일 감정은 물론 일본의 혐한 정서도 주기적으로 고조되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한일 사이에는 위안부 문제와 초계기 갈등, 욱일기 논쟁 등 갈등 현안이 차고 넘친다.



문제는 이 같은 갈등 현안들 탓에 기존 정상 외교로 쌓아올린 양국 합의가 빈번히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일본과 발표한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출범과 함께 사실상 파기해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임기 막판에야 한일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낀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양국 정부 사이 공식 합의였음을 인정한다며 기존과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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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경색·해빙 반복…상설 협의 채널 가동해야=정부 안팎에서는 갈등의 단초가 되는 이슈들에 대해 기초 단계부터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상설 협의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협의체에는 양국 정부는 물론 국회와 학계·민간기업 등이 모두 참여해야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이 공통으로 겪는 저출산·고령화, 복지, 노동문제 등에 대한 해법을 공유할 수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 양국은 정치와 외교·역사에서 여러 현안이 있을 뿐 아니라 부동산과 경제·복지 문제 등 다양한 과제를 같이 안고 있다”며 “양국이 민관 협력을 통해 공통의 해결책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연구위원은 “정부는 이번 ‘징용 해법’ 협상 과정을 복기해 향후 한일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 사안을 해결하려는 노력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도 대통령실과 일본 총리 관저 및 각 정부 부처 간 상시적인 연례 협의체를 가동해 어떤 환경에서도 양국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일은 그간 관계 악화로 중단했던 정례 협의체를 재가동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이후 중단된 한일 외교차관급 전략대화와 ‘2+2(외교·국방)’ 형식의 외교안보 대화체인 안보정책협의회가 대표적이다. 안보정책협의회는 2018년 3월에 마지막으로 개최됐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이 왜 필요한지 국민이 먼저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지난 20년 동안 일본보다 중국과 잘 지내면 된다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었다”면서 “‘한국에 일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일반에 퍼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한일 갈등 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해봤자 공감을 사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를 위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사례처럼 양국 정부가 공동의 숙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신 분석관은 조언했다.

최 연구위원도 “한일 갈등의 근본적인 배경은 양국의 역사 인식의 차이”라면서 “(양 국민이)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사안을 생각하며 인식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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