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용병단이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의 동쪽 지역을 점령했다고 선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도 바흐무트가 며칠 안에 러시아에 함락될 수 있다고 보지만, 우크라이나는 철수를 거부하며 악전고투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의 바흐무트 점령이 전쟁의 향방을 가를 정도의 영향력은 발휘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용병단 와그너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 대표는 8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서 "바흐무트카강 동쪽의 모든 것은 와그너의 통제 아래에 있다"고 주장했다. 바흐무트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바흐무트카강을 기준으로 동·서부로 나뉜다. 러시아는 지난해 자국 영토 병합을 선포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6개월 전부터 바흐무트 공격에 집중했다. 도네츠크주에 위치한 바흐무트가 다른 도시를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으로 전쟁 전 7만 명이었던 바흐무트의 인구는 약 4000명으로 급감했다.
러시아가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진 않았지만, 서방에서는 와그너그룹이 곧 바흐무트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유럽연합(EU)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큰 손실을 입은 것은 사실이나 며칠 안에 바흐무트가 결국 함락될 것이라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도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군의 퇴각 뒤 동쪽 지역을 점령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바흐무트가 점령되면 러시아의 동부 진격로가 열릴 것이라며 사수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9일 페이스북에서 "적군이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며 "우리의 군대가 바흐무트와 주변 지역에 대한 공격을 격퇴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8일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바흐무트 점령 이후 그들은 (인근 도시인) 크라마토르스크나 슬로뱐스크로 갈 수 있고 도네츠크의 다른 길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며 "(바흐무트 사수는) 우리에게 전술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서방은 러시아의 바흐무트전 승리가 전쟁의 대세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바흐무트 함락이 이번 전쟁에서 전환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러시아를 깔봐서는 안 된다는 점 정도의 의미를 보여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러시아가 병력 및 물자 부족 탓에 바흐무트를 점령하더라도 다른 도시로 공세를 넓혀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애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군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더 잘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제는 더 제한적인 군사 목표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올해 주요 점령지를 획득할 정도로 회복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