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5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 버지니아주 내셔널랜딩 지역에 들어서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제2본사 1단계 사업인 ‘멧파크’ 건설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6월 완공을 앞둔 공사 현장에서는 대형 건물 두 곳의 출입로를 만들고 내부 사무실을 설치하는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불과 100여 m 떨어진 곳에서 올해 초 착공할 예정이던 2단계 사업 펜플레이스 부지는 잡초만 우거진 채 황량하게 남아 있었다. 랜드마크인 나선형 타워 건축과 더불어 아마존의 ‘미래’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펜플레이스는 최근 아마존 본사의 결정으로 사업이 전격 중단됐다. 인근을 산책하던 한 주민은 “아마존의 사업이 왜 멈춰 섰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지역 발전을 기대했던 주민들이 보기에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빅테크들이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물론 수년간 준비해온 개발 사업까지 포기하고 사옥을 임대하는 등 부동산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던 ‘문샷(moonshot)’, 이른바 혁신 사업들도 줄줄이 좌초하고 있다. 제프리 디 슐먼 워싱턴대 교수는 “아마존 제2본사 사업 중단은 미국 기술 사업의 ‘일시 중지’를 상징한다”고 진단했다.
2018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무려 238개 도시가 제안서를 냈을 정도로 유치전이 치열했던 아마존 제2본사 건설이 멈춰선 배경에는 실적 부진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 아마존의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은 20% 가까이 감소했으며 그 여파로 올 초에만 1만 8000여 명에 대한 구조 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급속히 늘어난 재택근무도 대형 오피스 확대에 대한 테크 업체들의 부담을 늘린다. 뉴욕타임스(NYT)는 “팬데믹이 직장 문화 자체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비용 절감 압박에 자구책을 찾는 곳은 아마존뿐이 아니다. 구글은 2분기부터 전 직원의 25%가량이 일하는 클라우드사업부를 대상으로 ‘2인 1책상’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뉴욕 등에 위치한 대규모 사무실 5곳에서 출근하는 날을 나눠 직원 두 명 책상 하나를 공유하는 방침으로 사무실 책상조차 공유 자원으로 삼자는 전략이다. 구글은 이를 ‘클라우드오피스 진화(CLOE)’로 명명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방침에 대해 직원들이 불만을 표하자 “부동산 자원이 굉장히 비싸다”며 “부동산을 특정 시간에 30% 정도만 사용한다면 이를 효율적으로 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인원 감축으로 사무실 공간이 남자 이를 임대해 수익을 내는 곳도 생겼다. 부동산 매체 리얼딜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랜드마크인 세일즈포스타워에서 최근 6개 층이 임대 매물로 나왔다. 전체 61층(8만 1300㎡)인 건물의 14%에 달하는 규모다. 세일즈포스는 연말 연초 두 차례에 걸쳐 10% 넘는 인원을 해고한 바 있다. 세일즈포스는 재임대를 통해 4억 5000만~6억 500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동시에 대규모로 투자하던 미래 먹거리도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아마존은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주력했던 알렉사 음성 인식 서비스, 무인 매장 아마존고, 드론 사업 등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이 사업들은 ‘제프 프로젝트’로 불릴 정도로 창업자가 큰 관심을 보였지만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렉사의 경우 한때 관련 인력이 2만 명에 달했으나 이번에 10% 이상을 감축했다.
구글도 검색 다음의 미래 먹거리로 불리던 문샷 프로젝트를 접고 있다. 최근 구글X의 전략팀은 한 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다. 과거 구글X 소속이었다가 분사한 생명공학 기업 베릴리도 인력 15%를 정리했고 산업용 로봇팔을 개발하는 인트린직도 20%를 감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열풍으로 호황을 맞았던 빅테크들에 역풍이 불어닥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