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단정한 얼굴이 그리는 악(惡).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연쇄살인마 준영(임시완)을 설명하는 말이다. 배우가 기존에 지녔던 정갈한 분위기가 스릴러 속 악역과 만나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으며 국내 넷플릭스 영화 1위와 30여 개 국가에서 TOP 10에 랭크되는 등 호성적을 이끌었다.
임시완은 최근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와 전작 ‘비상선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등에서 매력적인 악역 연기를 이어오고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악역을 도맡았던 건 아니었다. 임시완은 원래 특유의 선한 얼굴이 돋보이는 배우로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미생’ 등에서 성실하고 억울한 청년의 모습을 주로 연기했었다.
영화 ‘원라인’은 악역으로써 임시완의 가능성을 처음 끄집어낸 영화다. 임시완은 ‘원라인’에서 이전에 지니고 있던 청초한 이미지를 지우거나 탈바꿈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전면에 내세워 역이용한 캐릭터 구축이 읽힌다. 범죄 영화 ‘원라인’ 속 사기꾼 임시완은 험상궂거나 난폭하지 않다. ‘원라인’의 주인공 민재(임시완)가 대출 사기 업계에 막 발을 들이게 된 대학생이라서 그렇다.
영화는 실제로 한국에서 신권 지폐를 내기 직전이었던 2005년부터 2006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은행 사기를 벌이는 이른바 ‘작업 대출’이 영화의 소재다. 개봉 당시 ‘원라인’은 저조한 관객 수로 흥행 면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가졌지만, 웬만한 금융 범죄 영화 중에서도 깔끔한 서사 구조로 재미 요소를 갖추었다.
영화의 재미에는 앞서 언급한 배우로서의 임시완의 매력이 크게 작용한다. 임시완이 사기꾼으로 발을 디디는 시작에서는 그의 표정과 분위기를 십분 활용한다. “요즘엔 순진한 것도 죄니까”라고 말하며 피해자들을 속이는 민재의 표정이 순진무구하다. 물건을 깨뜨리거나 폭력을 가하는 장면 하나 없이 악랄한 캐릭터를 완성한다. 줄거리상에서 민재는 원래 사기의 대상이었다가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던 사기꾼 집단에게 역으로 배신을 가하며 사기꾼의 길에 접어든다.
비명문대 대학 출신으로 컴퓨터도, 포토샵도 못해서 사회 초년생이 되지 못했던 민재가 다른 방식으로 사기꾼의 초년을 맞는다. 영화는 민재가 정장을 입고 사람들을 속이는 일면을 되려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그 여정에는 대학생임에도 자기 집단을 배신하려 들었던 민재에게서 타고난 사기꾼 기질을 알아본 석구(진구)의 안목이 작용한다. 이어지는 민재와 석구의 긴장과 호흡이 극의 매력을 더하는 장치다.
이때 어우러지는 조연의 활용이 지혜롭다. 김선영, 이동휘, 안세하 등 연기력이 입증된 명배우들이 이른바 ‘치고 빠진다’는 표현에 걸맞게 움직여 전개에 활력을 더한다. 극 중 기태(박종환)와 해선(왕지원)이 민재의 곁을 지키는 모습도 다른 범죄물들과 차별점이 된다. 민재가 석구에게서 독립해 자기 업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조력자들의 존재감이 과하지 않아 피로를 덜고 몰입감은 더한다. 특히 해선은 누아르물에서 종종 보이는 소모되는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욕구가 있는 여성으로서 조력한다. 해선의 행동이 서사에 있어 유의미한 의미를 지니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린다.
영화의 메시지도 담백하다. 영화 말미에서는 신파적인 요소 없이 피해자를 그저 비추는 카메라가 돋보인다. 범죄 영화에서 범죄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보여주기만 하는 구성이 신선하다. 검찰 수사와 엮인 금융 범죄 사기 소재를 담았지만 정치적인 메시지나 경제 원리 이야기는 전무하다. 교훈적이기보다 재미를 추구한다. 흔한 형사물이나 범죄 스릴러를 예상하고 팔짱 낀 채 보다 보면 어느새 몰입하게 되는 스토리텔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죽어 나가는 거, 그거 모르십니까.” 결국은 돈에 대한 이야기다. 돈으로 돈 버는 사기를 그리는 범죄 장르물이 담백하다. ‘원라인’ 속 형사는 정의롭지만 피곤하지 않고, 민재는 똑똑하지만 무정하지 않다. 전개 중에는 사기에도 도의적 원칙이 있는 범죄 집단이 움직이며 납득되는 선택을 펼친다. 대학생 민재가 사기 수법을 배워가는 중에 범죄 스승 석구를 흉내 내는 말들을 내뱉을 때면 얼핏 친근한 느낌도 든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임시완이 섬뜩했다면 ‘원라인’의 임시완에게는 마음이 간다. 물론, 둘 다 범죄자로서 번뜩인다.
◆시식평 : ‘미생’보다 ‘불한당’이 당기는 날에, 힘 빼고 보기 좋은 귀여운 범죄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