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의 할머니는 나흘 동안 72홀을 보행기를 밀며 손자와 함께했다. 손자의 우승 퍼트가 들어갔을 때 누구보다 큰 박수를 보냈고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손자는 할머니를 꼭 안아주며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13일(한국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TPC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파72)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4라운드. ‘제5의 메이저’로 불리며 총상금 2500만 달러(약 330억 원) 특급 대회로 치러진 이 대회의 트로피와 우승 상금 450만 달러(약 59억 5000만 원)를 손에 쥔 것은 스코티 셰플러(27·미국)였다.
셰플러는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2위 티럴 해턴(잉글랜드)을 5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그는 “72홀을 걸으며 나와 함께해준 할머니에게 정말 감명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와 9개월 된 조카,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나와서 즐길 수 있어서 정말 특별했고 오늘을 함께 축하하고 기념할 것을 생각하니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셰플러는 이번 우승으로 지난달 피닉스 오픈에 이어 올해 2승, 통산 6승째를 달성했다. 최근 13개월 동안 27개 대회에서 6승을 올렸는데 굵직굵직한 대회만 골라서 쓸어 담았다.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와 피닉스 오픈 2연패 등 6개 대회에서 우승 상금으로만 1653만 6000달러(약 215억 1000만 원)를 벌었다. 또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이상 미국)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마스터스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연속으로 제패한 선수가 됐다.
남자 골프 세계 랭킹 1위도 탈환했다. 최근 세계 1위는 셰플러,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욘 람(스페인)의 삼파전이었다. 지난달 초까지 매킬로이가 1위였고 이후 셰플러와 람이 1위 자리를 주고받았다. 지난달 피닉스 오픈 우승과 함께 1위에 올랐다가 람에게 자리를 내준 셰플러는 이날 우승으로 3주 만에 세계 1위 타이틀을 탈환했다. 람은 이번 대회 1라운드를 마친 뒤 기권했고 매킬로이는 컷 탈락했다.
2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에 나선 셰플러는 버디 5개, 보기 2개로 3언더파 69타를 적었다. 나흘 동안 60대 타수를 친 것은 셰플러가 유일하다. 3번 홀(파3) 보기로 출발은 불안했지만 8번부터 12번 홀까지 5연속 버디 쇼로 2위권과의 격차를 벌렸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임팩트 때 두 발을 미끄러뜨리는 독특한 스윙은 이번 대회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드라이버 샷 평균 305.9야드로 이 부문 1위에 올랐고 이날 5번 홀(파4)에서는 티샷으로 330야드를 날리기도 했다.
‘물귀신’으로 악명 높은 17번 홀(파3)은 올해 홀인원 풍년이었다. 130야드 안팎으로 세팅되는 이 홀은 1982년부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치르면서 지난해까지 단 10개의 홀인원만 나왔다. 그런데 올해 대회에서만 3개가 나왔다. 한 대회에서 2개 이상의 홀인원이 나온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반대로 올해 물에 빠진 공의 개수도 평균보다 많았다. 2003년부터 집계한 기록에 따르면 해마다 평균 48개의 볼이 물에 빠졌는데 올해는 58개로 집계됐다.
한국의 임성재는 이븐파를 쳐 공동 6위(8언더파 280타)에 올랐다. 상금 73만 6607달러(약 9억 5000만 원)를 챙겼다. 2타 차 2위로 4라운드에 나선 교포 선수 이민우(호주)는 4타를 잃고 공동 6위로 마쳤다. 2017년 이 대회 우승자 김시우는 공동 27위(5언더파), 안병훈은 공동 35위(4언더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