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금리 인상에 미국 은행 세 곳이 연달아 무너지는 등 금융 시스템의 이상 조짐이 심상치 않다. 9일 암호화폐 전문 은행 실버게이트가 자체 청산하고 10일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 절차에 돌입한 데 이어 12일에는 시그니처은행도 폐쇄됐다. 사태의 파문이 밀려오자 우리 정부는 1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금융 시스템 점검에 나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회의에서 “SVB 사태의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높은 경각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SVB 파산 직후에 열린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에서 “국내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시장 진정에 방점을 찍은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하자 뒤늦게 발언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문 닫은 미국 은행들에 대한 우리 금융기관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크지 않아 다행이지만 금융 부문은 조그마한 균열이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 곳곳에는 약한 고리가 한둘이 아니다. 취약 부문의 문제점들을 사전에 제거하지 못하면 연쇄 부실 사태로 금융 시스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지금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과도한 가계 부채 등이 ‘잠재적인 폭탄’으로 거론된다.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2019년 말 94조 원에서 지난해 9월 141조 원으로 증가했다. 가계 부채 비율은 200%를 넘어 미국(101.2%)의 두 배에 달한다. 2021년 기준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 85만 8566개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좀비 기업’의 비중은 40.5%에 이른다. 지난해 3분기 저축은행의 합산 연체액은 3조 원을 넘고 연체율도 3%를 초과해 6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상호금융의 대부분은 유동성 비율이 기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은 약한 고리를 사전 점검하고 방파제를 높이 쌓아야 할 때다. 위기 징후가 가시화될 경우 미국처럼 신속한 대책으로 불씨를 끌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지난해 금융 당국의 ‘늑장 대응’으로 자본시장에 대혼란을 초래한 레고랜드 사태와 유사한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선제적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